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들고 있는 문건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 연합뉴스
청와대가 14일 공개한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문건에는 보수 성향 언론을 활용해 법원의 간첩사건 무죄 판결을 비판하고 세월호 유족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 사건의 비난 여론을 키우는 등 청와대가 직접 여론몰이와 갈등을 조장한 정황들이 엿보인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수첩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일부 확인된 바 있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자료도 있다. 지금 제가 보여드리는 것이 그 자필 메모”라며 “여기에는 일부 언론, 간첩사건 무죄 판결, 조선, 간첩에 대한 관대한 판사, 차제 정보 수사 협업으로 신속 특별 행사법 입법토록 화살표 안보 공고히”라고 적힌 내용을 공개했다.
2014년 2월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도중 국가정보원이 낸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자 검찰은 곤궁한 처지에 빠졌고 간첩 혐의를 받던 유우성씨는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015년 10월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보수 성향 언론을 활용해 대응 여론을 만들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간첩사건에 관대한 판사’라고 적시한 부분은 판사 길들이기를 시도한 정황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말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발견된 바 있다. “간첩 무죄 수사도 적폐. 판사성향에 불구 트집잡히지 않도록 완벽하게”, “직파간첩 무죄 → 실체보다 언론보도 이미지 크다”,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 필요 → 국가적 행사 때” 등의 기록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김영한 수석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발언을 정리한 내용으로 해석됐다. 이번에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도 김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청와대가 공개한 문건의 ‘대리기사 남부고발(남부지검 고발) 철저 수사 지휘 다그치도록’이라는 부분은 2014년 9월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원회 임원진이 대리운전기사를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검찰 고발을 종용한 흔적으로 읽힌다. 2014년 9월17일 새벽 세월호 유족들은 음주상태로 대리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은 유족 일부를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이틀 뒤 보수단체 자유청년연합은 김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을 대리기사 폭행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세월호 유족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밖에 청와대 공개 문건에는 ‘전교조 국사교과서 조직적 추진. 교육부 외에 애국단체 우익단체 연합 쪽으로 전사들을 조직. 반대 선언 공표 등’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2015년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하자 맞대응하는 여론을 정부가 조장하려 한 정황으로 해석된다. 실제 허현준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은 2015년 10월19일부터 같은해 12월2일까지 자유총연맹 쪽에 국정교과서 지지 집회를 촉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지난 1월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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