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키는 균은 시가독소 생성 대장균이다. 소·돼지·염소나 양의 대장에 사는 균으로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무시무시한 병원균이 된다. 이렇게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와 병을 일으키는 것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햄버거를 둘러싼 공포감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장염을 앓은 뒤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에 걸려 콩팥(신장) 장애를 갖게 된 4살 아이의 가족들이 발병 원인으로 ‘햄버거’를 지목하면서부터입니다. 가족들은 제조사인 한국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아직 아이의 병과 햄버거의 인과관계는 명확하게 규명되진 않았는데요. 용혈성요독증후군이란 과연 어떤 병일까요? 이 병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것일까요?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출판사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을 운영하는 강병철 대표에게 조언을 청했습니다.
햄버거뿐 아니라 채소·과일 등
생명 위협 ‘용혈성요독증후군’ 유발
주 원인은 시가독소 생성 대장균
소·돼지 대장에 살다 인간에게로
가축들 공장서 찍어내듯 대량생산
쏟아진 분뇨엔 항생제·병원균 뒤섞여
오염된 농산물·물놀이도 HUS 일으켜
고깃값 낮추려는 탐욕이 대장균 전파
홍 선배님, 보내주신 기사 잘 봤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4살 아이의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근래에 이 병의 발생 원인이 햄버거 때문이라고 확인된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독일이나 미국에서 일어난 집단발병은 유기농 오이나 시금치가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대장균의 감염 경로는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일 수 있기 때문’에 ‘채소, 과일, 고기, 우유, 요구르트, 치즈,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의 접촉, 물놀이 등도 원인이 된다’는 말도 정확합니다.
사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폐해가 생각보다 큽니다. 의학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인플루엔자에 ‘독감’이란 병명을 붙여놓으니 사람들은 ‘독한 감기’쯤으로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다시 감기는 누구나 걸리는 거고, 나는 건강하니까 감기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예방접종을 건너뛰게 되죠. 우리나라에서 청소년과 노인층의 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자살은 우울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명을 ‘우울증’이라고 붙여놓으니 가끔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네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느냐, 그 정도는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등의 반응이 나오기 일쑤입니다. 신체적 원인에 대한 이해와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을 질병 상태로 몰고 가는 사회적 조건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언어의 힘이 이토록 크기에 햄버거병이라는 명칭 자체가 햄버거가 원인이라는 생각을 부추길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을 햄버거병이라고 단순화하는 태도가 부당하고 비과학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해 보입니다. 사건을 둘러싸고 이분법적 편가르기로 치닫는 양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거대자본을 휘두르는 다국적기업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맥도날드의 잘못을 거의 기정사실로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내려놓고 사실을 거기에 맞추려고 합니다. 이런 태도에서 “잠복기가 3~4일이라지만 어린이는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라든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어디 있느냐”라는 비이성적인 반박이 나옵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주로 어린이들이 걸립니다. 잠복기가 3~4일이라는 건 애초에 어린이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없지요. 하지만 환자를 보는 의사라면 그런 말에 혀를 찰 겁니다. 그렇게 희박한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세상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감정적인 댓글을 보며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소모적인 설전을 벌이는 대신, 저는 멀리 내다보고 깊게 들여다볼 마음을 지닌 분들을 초대하여 더 큰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맥도날드 매장에서 한 아이가 햄버거를 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돼지 균이 인간에게로
용혈성요독증후군의 원인균은 몇 가지가 있지만 주로 ‘대장균’입니다. 대장균은 한 가지 세균이 아니라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 대장 속에 살면서 대개 우리 몸에 이로운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병을 일으키는 나쁜 대장균도 있습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키는 균은 시가독소(Shiga-toxin) 생성 대장균이란 녀석입니다. 말 그대로 시가독소라는 독소를 만들어냅니다. 시가독소는 장세포와 혈관세포를 침범하여 출혈성 장염을 일으킵니다. 배가 아프고 피 섞인 설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10~15% 정도에서는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후유증으로 콩팥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콩팥 없이 살 수 없으므로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을 통해 콩팥 기능을 대신해주어야 합니다. 다행히 장기적으로는 콩팥 이식을 받아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가독소 대장균은 인간의 균이 아닙니다. 본래 소나 돼지, 염소나 양의 대장에 삽니다. 소나 돼지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무시무시한 병원균이 돼버립니다. 이렇게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와 병을 일으키는 것을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라고 합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신종 전염병, 특히 전세계적인 유행병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아직도 유행 중인 에이즈, 아프리카를 휩쓸며 세계적인 보건 문제로 부상한 말라리아, 1918년에 5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이후로도 조류독감 등의 형태로 인류를 위협하는 독감, 2000년대 초반 무시무시한 전염력과 치사율로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사스(SARS), 에볼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기로 몰고 갔던 메르스(MERS)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왜 최근 들어 인수공통감염병이 문제일까요? 동물과 인간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살았을 때는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넘어오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갈수록 먹이를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이 살던 숲을 밀어 집과 공장을 짓습니다. 서식지 한복판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고 속도를 즐기다 동물들을 치어 죽이죠. 고기를 위해, 실험을 위해, 심지어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을 죽입니다. 보금자리에서 내몰린 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의 주거지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동물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동물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우리는 더욱 값싼 물건을 펑펑 쓰기 위해, 또는 짜릿한 경험을 찾아 배로, 자동차로, 비행기로 하루에도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합니다. 그때 모기나 쥐 등의 매개체, 또는 감염된 인간이 삽시간에 병원체를 지구 반대편 대륙으로 전파합니다. 감염 기회가 늘고 전파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진 겁니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사건으로 기후변화와 인수공통감염병의 전세계적인 유행병을 꼽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가 먹는 소, 돼지, 닭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대량생산된다.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똥연못을 만들고, 도축 때 비숙련공을 쓰는 것은 모두 고깃값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윤운식 기자 yws@hai.co.kr
거름으로도 쓰지 못할 가축의 똥
하지만 소나 돼지는 야생동물이 아니지요? 우리와 수천년을 함께 살아온 가축입니다. 가축도 위험할까요? 위험합니다. 공장식 축산 때문입니다. 소나 돼지, 닭을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대량생산한다는 개념입니다. 30~40년 전만 해도 고기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어지간한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명절에나 고기맛을 봤습니다. 지금은 아주 적은 돈만 내면 무한리필이 가능한 식당에서 고기를 양껏 먹습니다. 닭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먼 훗날 우리 시대의 문명을 드러내는 지질학적 증거 중에 수많은 닭뼈가 들어갈 거라고도 합니다.
그 많은 고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물론 동물을 기계에서 찍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마찬가지입니다. 밀집식 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 얘깁니다. 선배님도 닭들을 평생 A4용지만한 공간 속에 가둬놓고 키운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셨지요?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공간에 밀집된 상태로 키웁니다. 소 같으면 빨리 살을 찌우기 위해 하루 종일 옥수수를 무제한 급식합니다.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것이 아니라 다닥다닥 붙어서 운동도 못 하고 옥수수만 열심히 먹어대는 소들은 살만 찔 뿐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닭들은 조류독감이 한번 돌면 추풍낙엽처럼 쓰러집니다. 그래서 병이 도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 먹입니다. 풀 대신 옥수수를 먹여 키운 소들의 장에서는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키는 시가독소 생성 대장균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옛날에 소똥은 질 좋은 거름이었고 지금도 말려서 연료로 쓰는 지역도 있지만, 밀집식 사육시설에서 키운 동물의 똥은 거름으로도 쓰지 못합니다. 게다가 항생제를 계속 먹이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이 엄청나게 생깁니다. 부담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옵니다.
이런 대규모 시설에서는 분뇨 처리도 문제입니다. 하루 종일 먹기만 하니 똥은 얼마나 많이 싸겠습니까?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분뇨를 처리할 수 없어 대개 목장 옆에 작은 인공호수를 만듭니다. 영어에 ‘라군’(lagoo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석호’라고 옮기죠. 속초에 있는 영랑호, 청초호가 석호입니다. 이 낭만적인 말 앞에 결코 결합할 수 없는 ‘머뉴어’(manure)란 말이 붙습니다. 머뉴어는 동물의 똥이란 뜻입니다. 엄청난 양의 병원균과 항생제와 호르몬이 섞여 있는 똥연못이지요. 푹푹 썩으면서 공기 중에 메탄을 방출하여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킵니다(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그 속에서는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재조합되어 어떤 병원균이 탄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느 정도 침출이 일어나고, 폭우나 강풍에 넘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물과 흙과 공기가 모두 오염되는 거죠. ‘채소, 과일, 고기, 우유, 심지어 물놀이를 통해서도’ 용혈성요독증후군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가축들은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 도살됩니다. 도살 후 고기를 처리하는 과정에는 비숙련 노동자를 씁니다. 서투른 솜씨로 창자를 잘못 건드려 배설물이 범벅이 돼도 치울 시간이 없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고기를 발라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고기가 오염되기 쉽습니다. 덩어리 고기는 겉만 오염됩니다. 익힐 때 겉에 있던 균이 죽으니 속까지 익히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는 조각 고기와 지방을 섞어 갈아버린 분쇄육입니다. 표면에 묻었던 대장균이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속까지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는 겁니다.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똥연못을 만들고, 도축 때 비숙련공을 쓰는 것은 모두 고기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겁니다. 고기에 중독된 우리에게 계속 싼 가격에 고기를 공급하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축산업 자체가 이윤이 박합니다. 축사나 분뇨처리시설의 개량, 숙련 노동자의 고용 등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악순환이지요. 그러니 진짜 문제는 햄버거가 아니라 우리의 끝없는 탐욕과 이윤에 눈먼 자본주의입니다.
‘햄버거병’에 담긴 통찰
선배님 저는요, 조금 부정확해도 햄버거병이란 이름을 계속 썼으면 좋겠습니다. 군중으로서 우리는 때로 너무나 어리석지만, 집단무의식에 의해 선택한 이름은 놀랄 만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개에게 물려 광견병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로 야생동물에게 물려서 걸리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견병이라고 부릅니다. 제게 그 이름은 너무나 친숙한 것, 일상적인 것, 친구라고 믿었던 것이 치명적인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의 은유처럼 느껴집니다. 햄버거도 친숙하고, 일상적이고, ‘해피밀’이라는 이름처럼 안온함을 줄지 모르지만, 사실 용혈성요독증후군이 아니더라도 피해야 할 음식입니다. 저는 햄버거병이란 이름을 통해 그것이 좋은 음식이 아니란 사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패스트푸드라는 싸구려 행복 이면에 도사린 인간 중심주의, 동물학대, 노동착취, 환경과 생명을 외면하고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 손쉬운 만족을 끝없이 탐닉하는 우리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목 좋은 곳에 햄버거집을 내는 게 가진 자들의 노후 대비가 되는 대신, 그 앞을 서성이던 부모와 아이가 나란히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 맛있는 밥을 지어 먹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이것도 우리의 업보겠지요.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강병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