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시청광장에서 한 참가자가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머리띠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15일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한 서울광장에 수만개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떴다. 제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이곳에 주최쪽 추산 7만명(경찰 추산 9000명)이 모여 깃발부터 머리띠까지 성소수자 인권을 표상하는 형형색색 무지개빛 상징물을 선보였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맞서야 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며 이번 축제 구호를 입모아 외쳤다. 축제는 이날 오전 11시 부스 행사로 막을 열었다. 서울광장 주변에 100여개 부스가 마련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스를 차렸고, 주한미국대사관 등 13개 외국 공관, 진보적 개신교와 조계종, 구글코리아·러쉬코리아 등 기업체들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진 로베르토 파워스 미국대사관 총영사는 “전세계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애쓰는 분들을 지지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모두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자”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15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시청광장에서 참가자들이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머리띠 등을 한 채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5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시청광장에 한 강아지가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 손수건을 몸에 두른 채 앉아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축제에 참여한 청소년 ㄱ(17)양은 “기독교 학교라서 평소에도 퀴어 혐오발언 등을 많이 접한다. 막상 와보니 여느 축제와 다름없이 흥겹고 활기차 보여서 좋다”고 말했다. 예수 복장을 한 미국인 영어 교사 로버트 마이클 에반스(27)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이유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어서 이런 차림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직원들은 ‘사람을 반대할 수는 없다’, ‘다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왔다. 신홍주 인권위 소통협력팀장은 “이번 참여가 좋은 선례가 되어서 앞으로 계속 참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인권위도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 단체로는 유일하게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도 올해 처음 퀴어축제에 나왔다. 스님들이 직접 법고(북)를 치며 춤을 추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원내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축제를 찾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성 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이런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가는 첫발이라고 생각한다”며, 동성군인의 성관계 자체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 폐지와 ‘동성혼 합법화’를 약속했다.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열린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과 종로 일대에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흥겹게 행진하고 있다. 퀴어퍼레이드의 종로 행진 허가는 11년만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축제 참가자들은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을지로입구→퇴계로2가→회현로터리를 거쳐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오는 4㎞ 행진에 나섰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20~23일 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 신사관에서 열리는 한국퀴어영화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열린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과 종로 일대에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흥겹게 행진하고 있다. 퀴어퍼레이드의 종로 행진 허가는 11년만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5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시청광장을 출발해 종각을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5일 서울광장 바로 맞은편인 대한문 앞에선 한국 보수 기독교 교단이 연합한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준비위원회’가 ‘동성애 반대 국민대회’를 열었다. 경찰은 서울광장 주변을 펜스로 둘러싸고 두 집회 참가자들의 접촉을 차단했으며, 별다른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박수지 황금비 기자, 조진영 교육연수생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