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역사 공부 석달간 판결문 썼다” 친일파 후손 토지환수 소송 각하한 이종광 판사
“1년간 역사 공부 석달간 판결문 썼다”
“1년 이상 근현대사 공부 열심히 한 셈이죠. 프랑스·독일·중국의 역사청산 과정 등, 관련 책도 15~16권쯤 읽었습니다. 석 달 동안 일요일마다 출근해 판결문을 써왔는데, 이제는 다 털어냈으니 홀가분한 느낌입니다.”
친일파 이근호의 후손이 제기한 토지환수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수원지방법원 이종광(37·사시 36회) 판사는 16일 “원래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본의 아니게 나름대로 전문가가 된 느낌”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원고 신분 확인 뒤 ‘친일’ 연구
‘국회 직무유기’ 밝히는 데 심혈
“천직 아니라도 정치보다 낫다” “당연하겠지만, 소송을 제기하는 친일파 후손들은 소장에서 소유권 증빙 자료만 제시할 뿐 자신의 조상에 대한 언급은 안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원고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원고가 10여건의 비슷한 토지환수 소송을 낸 사실을 알게 돼 이상하게 여기고 주변에 확인해보니 친일파 후손이라더군요.” 단순한 토지환수 소송이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로 바뀌면서 ‘공부’가 시작됐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친일파 개괄과 이근호 개인에 대한 연구, 토지 등기와 관련한 법원 판례의 변화, 외국 과거청산 사례 등을 종합한 끝에 올해 여름에야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 ‘1.인정사실 2.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에 관한 입법사항 3.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에 대한 판례의 태도 4.외국의 과거청산법과 우리나라의 경우 5.삼일(3·1)운동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헌법적 의의 6.국회의 헌법상 입법의무의 불이행….’ 오랜 공부의 산물인 판결문에는 이와 같은 판결 논거 목차가 나열돼 있다. 80쪽 가까운 판결문의 내용 또한 대부분 이런 ‘학술적인’ 주제들에 대한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전례 없던 판결인 만큼 부담이 컸고, 특히 국회가 입법의무를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당연히 만들어야 할 법률을 국회가 만들지 않았다면 위헌이라는 199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더군요. 조선철도주식회사가 개인의 땅을 수용해 그 보상절차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했는데, 법을 만들지 않아 수십년이 흐른 뒤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법률제정 의무를 자의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987년 연세대 법대에 입학한 386세대인 이 판사는 2003년에는 전국 판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무죄 선고율(10% 안팎)을 보이기도 했다. 이 판사는 “헌법이란 게 개개인의 공통된 정치적 의사가 결집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우리 구성원들이 모두 공유하는 감정, 특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와 함께하는 정신이라면 그게 바로 헌법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글·사진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국회 직무유기’ 밝히는 데 심혈
“천직 아니라도 정치보다 낫다” “당연하겠지만, 소송을 제기하는 친일파 후손들은 소장에서 소유권 증빙 자료만 제시할 뿐 자신의 조상에 대한 언급은 안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원고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원고가 10여건의 비슷한 토지환수 소송을 낸 사실을 알게 돼 이상하게 여기고 주변에 확인해보니 친일파 후손이라더군요.” 단순한 토지환수 소송이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로 바뀌면서 ‘공부’가 시작됐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친일파 개괄과 이근호 개인에 대한 연구, 토지 등기와 관련한 법원 판례의 변화, 외국 과거청산 사례 등을 종합한 끝에 올해 여름에야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 ‘1.인정사실 2.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에 관한 입법사항 3.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에 대한 판례의 태도 4.외국의 과거청산법과 우리나라의 경우 5.삼일(3·1)운동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헌법적 의의 6.국회의 헌법상 입법의무의 불이행….’ 오랜 공부의 산물인 판결문에는 이와 같은 판결 논거 목차가 나열돼 있다. 80쪽 가까운 판결문의 내용 또한 대부분 이런 ‘학술적인’ 주제들에 대한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전례 없던 판결인 만큼 부담이 컸고, 특히 국회가 입법의무를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당연히 만들어야 할 법률을 국회가 만들지 않았다면 위헌이라는 199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더군요. 조선철도주식회사가 개인의 땅을 수용해 그 보상절차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했는데, 법을 만들지 않아 수십년이 흐른 뒤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법률제정 의무를 자의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987년 연세대 법대에 입학한 386세대인 이 판사는 2003년에는 전국 판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무죄 선고율(10% 안팎)을 보이기도 했다. 이 판사는 “헌법이란 게 개개인의 공통된 정치적 의사가 결집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우리 구성원들이 모두 공유하는 감정, 특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와 함께하는 정신이라면 그게 바로 헌법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글·사진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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