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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해하기 쉬운 헌법 책 쓰고자 법조인 됐죠”

등록 2017-07-24 18:59수정 2017-07-25 08:50

【짬 헌법교양서 펴낸 헌법학자 김진한 박사

김진한 박사는 ‘헌법재판관이 되고 싶나’라는 물음에 “각자에겐 자신의 역할이 있는 듯 하다. 저는 떠돌이 성향으로, 헌법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쓰는 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사시를 합격한 뒤에도 1년 동안 영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머문 적이 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김진한 박사는 ‘헌법재판관이 되고 싶나’라는 물음에 “각자에겐 자신의 역할이 있는 듯 하다. 저는 떠돌이 성향으로, 헌법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쓰는 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사시를 합격한 뒤에도 1년 동안 영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머문 적이 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21일 서울 교대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헌법학자 김진한(49)씨는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고시 공부를 할 때부터 꿈꿔온 헌법 교양서를 최근 펴낸데다,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다. 그가 최근 펴낸 <헌법을 쓰는 시간>(메디치)은 발간 1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제가 법조인이 된 것은 시민들이 헌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은 제 인생 버킷리스트 1호입니다.”

1990년대 초 뒤늦은 고시 공부로 답답한 시간을 보낼 때도 헌법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헌법 교과서를 읽는 시간은 저에게 휴식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마침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헌재가 국회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리고, 권력이 그에 따라 법을 바꾸더군요. 헌재를 설계한 이들조차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일이 현실화된 것이죠.” 이런 생각도 했다. ‘국민들이 헌법을 제대로 공부한다면 헌법의 힘이 커지고 그 결과 권력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겠다.’

헌재 결정문에 붙는 소수의견에 특히 마음이 끌렸다. “우리는 늘 정답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잖아요. 하지만 (헌재의) 소수의견은 미래 사회를 제시하는 구실을 하더군요. 헌법에 정답이 없고 토론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고 그게 합쳐져 권력을 복종시키는 걸 보고 가슴이 뛰었죠.”

사시 준비 때부터 헌법 공부에 흥미
헌재 초창기 ‘위헌 결정’ 보며 “가슴 뛰어”
헌법연구관 지낸 뒤 강단 서기도

‘헌법을 쓰는 시간’ 출간 1주일새 2쇄
‘권력을 제한하는 여섯가지 원칙’ 정리
“헌재 제기능 한다면 ‘국정농단’ 못해”

지난 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자원했다. “2000년에 연수원 동기 중 저를 포함해 두 명이 헌법연구관에 임용됐죠. 지원은 30여명이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12년을 헌재에서 일한 뒤 2012년부터 3년 동안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14년엔 고려대에서 헌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3월부터는 독일 남부 에를랑겐의 프리드리히-알렉산더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머물고 있다.

책은 우리 헌법의 이상과 실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헌법연구관과 학자로서 헌법에 대해 보고 배운 것들을 쉽고 간결한 언어로 정리했다. 책은 ‘권력을 제한하는 여섯 가지 원칙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그에게 헌법은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도구이다. 그는 이런 우리 헌법의 이상을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서구 민주주의 역사와 사법 시스템을 끌어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 헌법의 본질이 권력자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훼손되는 현실을 짚어내는 대목들이다.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방송> 장악을 위해 당시 정연주 사장을 내몰자 정 사장은 해임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법원은 해임이 위법했다고 확인했지만, 한국방송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미국은 어땠을까? 연방법원은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이슬람 국가 국민에 대해 내린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했다. 우리 헌재는 2010년 국방부 금서목록의 근거가 된 대통령령 규정에 대해 합헌 선언을 했다.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누릴 대상에서 군인을 빼버린 것이다. 그는 “7년 전 헌재가 제 기능을 다했다면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헌법 수호자로서 헌재의 기능이 초창기에 견줘 많이 후퇴했다고 평했다. 가장 큰 이유를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에서 찾았다. “출범 당시 헌재는 미래가 불투명한 기관이었어요. 그래서 법조계의 아웃사이더들로 구성됐어요. 이들은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열정이 컸어요. 그 뒤 헌재 위상이 높아지면서 법조 엘리트들로 그 자리가 채워지고 있어요. 이들은 달리 생각하는 걸 잘 못해요. 헌재가 왜 독립기관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결정들이 나오는 이유이죠.”

그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늘리는 게 사법부 독립을 위해 중요하다고 봤다. “임기가 짧을수록 권력이 약한 사법부는 의회와 대통령 권력에 흡수되기 쉬워요. 임기가 길면 후보자를 신중하게 고르죠. 또 하위 법관들이 그 자리를 노리면서 사법적 판단을 흐리는 일도 줄어들죠.” 그는 앞으로도 3~4년 독일에서 더 공부할 생각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 교육과 사법 시스템 분야를 파고들어 그 결과물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같은 헌법을 갖더라도 민주주의 시스템의 작동엔 나라별로 차이를 보인다. 이유가 뭘까? “브라질을 보세요. 정치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상원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국민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요. 헌법은 강제수단이 없어요. 최종적으로 국민이 작동시킵니다. 국민들이 헌법을 제대로 알고 더 굳건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질수록 국민들은 자유롭고 안전해집니다.”

개헌은? “4년제 중임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전제가 있어요. 대통령의 권력을 여러 수단으로 약화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중임제 아래의 모든 권력은 대통령에게 2배로 충성할 것입니다.”

헌법연구관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헌법연구관 2년차인 2001년이었죠. 당시 공무원은 ‘징역형 선고유예’만 받아도 별도의 징계절차 없이 퇴직해야 했어요. 제가 공무원도 직업인인데 합리적 이유 없이 직업을 박탈할 수 없다는 취지로 연구보고서를 썼고, 여러 재판관들도 동의해 이 퇴직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났어요. 이전에 9 대 0 합헌 결정이 났던 사안인데 8 대 1 위헌으로 뒤집어졌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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