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왼쪽)과 김형남 간사가 26일 오전 서울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육군 제39사단장 문병호 소장의 폭행, 가혹행위 및 병영부조리 사건을 공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육군 대장 가족들이 관사에서 근무하는 공관병과 조리병에게 가족의 속옷 빨래 등 사적 업무를 시키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1일 군인권센터는 보도자료를 내어 “육군제2작전사령부 사령관 박찬주 대장의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공관병, 조리병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인권을 침해하고 갑질을 일삼았다”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센터가 복수의 제보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종합하면, 박찬주 대장의 부인은 청소나 조리, 빨래, 안방의 블라인드 치기 등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공관병에게 수시로 지시했다. 소파와 바닥에 떨어진 발톱같은 것까지 줍게했는데 청소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반말 폭언이 이어졌다고 한다. 미나리를 다듬던 조리병의 칼을 빼앗아 도마에 내리치며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상추같은 걸 준비해야지”라고 고함을 치며 위협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제보자도 있었다.
센터는 “공관병과 조리병이 400㎡(약120평)에 이르는 공관을 관리하면서 조리, 빨래, 다림질 등 온갖 잡무를 담당했는데, 장병 표준일과와 전혀 상관없이 사령관이 새벽기도를 가는 새벽 6시부터 잠드는 밤 10시까지 대기해야 했기 때문에 과로가 일상화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관병들은 같은 병사 신분인 사령관의 아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다. 사령관의 가족은 공군 병사로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이 휴가 나오면 공관병에게 아들의 속옷 빨래를 시키기도 했다고 센터는 전했다.
이런 갑질 횡포는 2016년 3월부터 올해 초까지 꾸준히 벌어졌지만 피해군인들은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센터는 “공관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 전화를 사용하려면 본부대대까지 20~30분까지 걸어가야했지만 피해군인들의 공관 외출은 금지돼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사령관의 부인은 공관병들에 대한 통제를 매우 심하게 해 이들의 면회·외박·외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센터는 “보다 못한 부사관 등이 이들을 눈치껏 내보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공관병의 업무를 명확하게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관병이 사실상 개인 몸종처럼 활용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공관병 제도를 없애야 한다. 입대한 장병들은 나라를 지키러 간 것이지 노예가 되러 간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육군은 박 사령관을 즉각 보직해임하고 사령관의 부인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군 관계자는 “공관병의 업무가 공관 시설에 대한 관리다. 화장실과 거실 관리는 업무에 들어갈 수도 있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공관병 등에 대한 지휘관의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센터는 지난달 말 육군제39사단에서 벌어진 공관병 폭행 및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했고, 이 일로 사단장 문병호 소장이 보직해임됐다. 지난 2015년에도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이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 운전병을 사적으로 부리다가 갑질 논란을 빚었다. 2005년에는 한 특공여단장과 부인이 비닐하우스 관리를 못하고,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공관병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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