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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는 왜 13년 전 기억을 유죄증거로 인정했을까?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08-01 14:02수정 2022-08-19 15:55

[더(The) 친절한 기자들]
23살 여성, 10살 때 자신 성폭행한 범인 법정에 세워
가해자 직장·범행장소 세부적 부분 일관되게 진술
피해자 “가해자 얼굴·이름 등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10살 때 어머니의 내연남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있었다. 어머니는 지적 장애가 있었고, 아버지 역시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당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13년이 흘러 2014년 우연히 대구 시내 한 버스터미널에서 가해자를 만났다. 23살이 된 피해자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살던 고모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를 고소했다. 증거는 피해자의 ‘기억’ 뿐이었다.

가해자인 63살의 남성은 혐의사실을 끝까지 부인했다.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결국 법원은 피해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어떻게 피해자의 13년 전 기억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을까?

가해자의 직장까지 완벽하게 기억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일관된다”고 평가했다.

피해자는 버스 운전기사였던 가해자의 회사 이름이 ‘ㄱ○고속’ 임은 물론, 버스의 자동차등록번호 뒷자리가 ‘6113’이며 ‘서울-고현 구간’을 운행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종종 피해자와 그 어머니를 버스에 태우고 이동하곤 했는데 그를 기억한 것이다.

실제로 피고인은 2004년경 ‘서울-고현 구간’ 버스를 운행했고, 해당 회사는 6113 버스를 소유하고 있었다. 피고인은 자신이 운행한 버스의 뒷자리가 6112이므로 피해자의 진술이 허위라고 주장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그 중 3자리가 일치하는 6113을 진술하고 있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버스를 알지 못했다면 이와같이 유사한 자동차등록번호를 특정하여 지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장용범) 판결문 발췌

인터넷 지도로 특정한 범행 장소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한 건물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했지만, 위치는 정확히 기억했다. 인터넷 지도 등을 통해 특정한 피해 장소는 가해자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범행이 일어난 ㅈ모텔은 피고인이 처와 자녀들이 피고인을 만나기 위해 고현 시외버스터미널에 올 경우 주로 투숙하여 피고인이 자주 이용하던 모텔이다. (중략) 피해자가 피해 장소로 고현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의 수많은 모텔 중 피고인이 자주 이용하던 ㅈ모텔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한 점에 비춰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피고인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장용범) 판결문 발췌

“당시 겪은 일이 매우 충격적이었고, 이후 피고인의 얼굴·이름·자동차등록번호 뒷자리 등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피해자는 법원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가해자가 아무일 없다는 듯 13년을 사는 동안 피해자는 13년 동안 고통을 새겨온 것이다.

법원은 “피해자는 만 10살의 어린 나이에 강간 및 강제추행을 당하여 13년이 지난 지금도 심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건전한 성적 가치관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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