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왼쪽)과 김형남 간사가 26일 오전 서울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육군 제39사단장 문병호 소장의 폭행, 가혹행위 및 병영부조리 사건을 공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육군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부부가 공관 근무병·조리병에게 갑질 행위를 일삼았다는 제보가 공개된 뒤 비슷한 피해를 봤다는 추가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제보자들은 공관병에게 호출벨과 연결된 전자팔찌를 차고 다니게 하면서 수시로 불러 잡일을 시키는가 하면,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추운 날씨에 한 시간가량 발코니에 가두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군인권센터는 2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박 대장의 공관에서 근무했던 근무병 다수로부터 피해 사실에 대한 추가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며 이런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센터가 복수의 제보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종합하면, 박 대장 부부는 공관 내에 호출벨을 설치하고 공관 근무병에게 호출벨과 연결된 전자팔찌를 차고 다니게 한 뒤 수시로 부르며 ‘물 떠오기’ 등의 잡일을 시켰다고 한다. 호출벨을 눌렀는데도 공관병이 늦게 오거나, 전자팔찌의 충전이 덜 되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경우 “한 번만 더 늦으면 영창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센터는 “‘2층으로 뛰어 올라오지 않았다고 다시 내려갔다가 뛰어 올라오라고 지시하거나, 호출벨을 집어 던져서 맞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밝혔다.
박 대장의 공관 내에는 사령관 개인이 사용하는 미니 골프장이 차려져 있어, 사령관이 골프를 칠 때면 공관병, 조리병 등은 마당에서 골프공 줍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인근 부대에서 병사로 복무하고 있는 아들이 휴가를 나오면 조리병들은 바비큐 파티 준비를 해야 했다고 한다. 박 대장의 부인이 공관병들을 종교와 상관없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데려가 예배에 참석시켰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1일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2015년 9월 청와대 보직신고 당시 박찬주 사령관. 연합뉴스
박 대장의 부인이 근무와 상관없는 잡일을 시키는 일도 많았다고 제보자들은 전했다. 센터는 “제보자의 부대 내에 모과가 많이 열리는데, 사령관 부부가 본부 소속 병사들을 통해 모과를 모두 따게 했고, 100여개가 넘는 모과를 조리병들에게 주며 모과 청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또 박 대장의 부인은 공관 근무병들에게 텃밭에서 자란 감을 따 곶감을 만들게 했는데, 날이 따뜻하고 비가 와 곶감에 벌레가 꼬이면 조리병의 탓으로 돌려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조리병들은 아침 6시부터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대기해야 했고, 일 처리가 미숙할 땐 “너희 엄마가 이렇게 가르쳤냐?”는 질책도 들었다고 한다.
‘발코니 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문을 잠가 공관병이 추운 날씨에 한 시간가량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발코니에 머무른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센터는 “제보의 내용을 보면, 종교의 자유 침해 등 심각한 인권침해이거나 부모 모욕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있다”며 “특히 호출벨과 전자팔찌까지 운영한 것은 공관병을 실질적인 ‘노예’로 부려먹은 증거“라고 지적했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는 입장을 내고 “사령관이 계속되는 군인권센터의 발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자중하는 것이지 사실을 인정하는 게 아니다. 국방부 감사에서 모든 의혹에 대해 소상히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31일 군인권센터는 박 대장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청소나 조리, 빨래 등의 잡일을 수시로 지시했고, 아들의 속옷 빨래를 시키기도 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이튿날 박 대장은 “지난 40년간 몸담아 왔던 군에 누를 끼치고 군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자책감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오늘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이와 무관하게 국방부의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 국토방위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미안하다”며 전역 의사를 밝혔다.
공관병 제도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1일 지휘관 공관에 근무하는 병력을 철수시키고 이들을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센터는 이날 “국방부 장관이 본인 공관의 근무 병사를 모두 철수시키며 불합리한 특권 타파에 나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도 “공관병을 대체하는 민간 인력 비용을 세금으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면 사비로 고용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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