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날에 이어 3일 재개된 피고인신문에서도 자신의 뇌물 공여 등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세 차례에 걸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에서 부정한 청탁이 없었고, 집중 지원의 대상이 된 정유라씨는 알지도 못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는 진술로 일관하면서도, 단독면담 때 나온 박 전 대통령의 질책 발언이나 분위기,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 등을 상당히 자세히 밝혔다. 면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여러 차례 질책했다는 점을 부각해 부정한 청탁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심리로 열린 피고인신문에서 자신이 2차(2015년 7월)·3차(2016년 2월) 단독면담 때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잇따라 질책을 받은 상황을 변호인 반대신문을 활용해 상세히 설명했다.
먼저 그는 2차 면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승마 지원 미흡 문제를 짚은 것이 ‘심한 질책’이란 표현으로 과장되게 전달됐다고 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이 승마협회 운영을 잘못한다. 한화보다 못하다. (승마 유망주들을) 전지훈련 보내주고 좋은 말을 사줘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 제대로 해라”며 자신을 강하게 다그쳐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에게 짜증을 내며 전달했다는 게 이 부회장 진술이다. 그는 “왜 대통령이 이런 것을 갖고 나한테 자꾸 (말하는지) 좀 귀찮았다. 승마협회가 별것도 아닌데 자꾸 얘기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게 처음이었다”면서 “제가 당황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회사에는 한 번 거르고 전달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이건희) 회장님(한테는) 자주 야단맞고 독한 훈련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아버님께 야단맞은 거 빼곤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것 같다”며 자신이 질책에 노출되는 상황이 이례적이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3차 단독면담 때 질책의 수위가 더 높아져 분위기가 무거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뉴스 프로그램에서 정권 관련 비판적 보도를 내놓는 <제이티비시>(JTBC)를 ‘이적단체’로 일컬으며 흥분했다는 것이 이 부회장 진술이다. 그는 “면담 끝나고 ‘제이티비시 얘기를 하려고 불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면담 자체가 홍석현 제이티비시 회장에게 말을 전해달라는 자리로 이해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또 “제이티비시에 대해선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정치적 보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그룹 현안 관련 청탁이나 부탁을 건넬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재차 부각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한 나머지 피고인신문을 마무리했으며, 이후 ‘삼성 뇌물’ 사건에 대한 특검팀과 변호인 양측의 주장을 들어본 뒤 오는 7일 재판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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