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성북3구역(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주민들이 서울시 지원을 받아, 쪼개진 마을을 살리기 위해 ‘꽃길’을 만들고 있다. 주민 노정순씨 제공
▶ 문재인 정부가 ‘8·2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두 번째 부동산 종합대책입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정부가 바뀌어도 기세를 떨구지 않고 있습니다. 폭발하는 부동산 열기에 올라타 재개발을 추진한 지 13년 만에 최근 서울시가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한 땅이 있습니다. 재개발의 파고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시 성북3구역(성북구 성북동)을 찾아 그 지난한 시간을 되짚었습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38번지 일대. 북한산국립공원과 성북동길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주로 단독주택과 다세대 빌라 등에서 서울 토박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네였다. 약 30년 이상 거주한 이들이 상당수여서 한때 이웃 간 교류가 가족 못지않았다고 이곳 주민들은 입 모아 말한다.
그러나 2004년 서울시가 이곳을 ‘성북3구역’으로 지정해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사업’에 포함시키면서 이웃 간 논쟁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성북3구역의 재개발도 2000년대 들어 폭발하던 한국 사회 부동산 열풍의 한복판에서 추진됐다. 지역 특성을 살리고 공동체를 활성화하기보다 개발 이익을 좇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는 전국을 갈아엎었다.
둘로 쪼개진 공동체
성북동 토박이 이영순(72)씨는 “어느 날 한 이웃이 찾아와 ‘동네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면서 조합이란 걸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20층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서울시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주민이 반대해도 재개발을 막기 어렵다’며 조합 설립에 동의해줄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그날 저녁 자녀와 긴 시간 가족회의 끝에 고향인 성북동을 도저히 떠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개발 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 조합 설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향을 잃고 싶지 않기에 오랜 삶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포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감이었다. 이씨는 “조합 설립에 동의했더니 조합 쪽에서 한참 후에 말을 바꿨다. 아파트가 아니라 저층 고급빌라촌을 짓겠다고 했다”며 “기존에 살던 35평 주택을 허문 대신 35평 고급빌라에 입주하려면 적어도 2억여원을 추가로 내야만 했는데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하겠나”라고 말했다. 재정 형편이 충분치 않았던 그는 뒤늦게 조합 설립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려 했으나 구청에서는 “결정을 바꾸기 어렵다”는 답만 반복했다.
신정숙(63·가명)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씨는 “성북3구역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초기에 주최 쪽이 불분명한 주민설명회가 몇 차례 열렸다”며 “그곳에서 ‘지금 가진 평수를 내놓으면 같은 평수의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는 장밋빛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이 이런 주장을 쉽게 믿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지인의 조언으로 정비사업이 원주민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8 일대
2004년 재개발정비구역사업 포함
정비사업 통해 개발이익 기대했으나
주민들 “사업성 없다”며 해제 요구
지역 내 찬반 여론 13년간 팽팽
단골술집에 발 끊으며 이웃 갈등
7월 사업 해제됐어도 상흔은 계속
이후 최씨는 이영순씨 등과 함께 성북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정비사업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성북3구역 재개발을 막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들의 시도는 재개발 사업이 신속히 추진되기를 바라는 외지 투자자를 비롯해 조합 쪽 주장에 동의하는 일부 주민들에게 번번이 가로막혀 갈등만 깊어졌다.
찬성을 요구하는 주민들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주민 김아무개씨는 “(조합 쪽에서) 고급빌라에 같은 평수로 들어가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평수가 큰 편인 단독주택을 가진 주민이나 손해 보지. 나같이 작은 평수의 빌라를 가진 사람은 재개발이 기회일 수도 있다”며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웃 때문에 답답하다”고도 했다.
이처럼 그동안 성북3구역에서는 “개발을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 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주민과 “분양권을 되팔아 이득을 남길 수 있다”며 찬성하는 외지투자자 및 주민이 팽팽히 대립해왔다. 재개발구역에서 으레 나타나는 ‘익숙한 골’이 성북3구역에서도 예외없이 파였다. 이런 논쟁은 지난 7월 성북3구역이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에 따라 직권해제 대상 구역으로 선정되기까지 약 13년간 계속됐다. 그사이 동고동락했던 오랜 이웃과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불편한 사이가 됐다는 주민이 적잖다.
“재개발 때문에 20년 단골 술집을 못 간 지 오래됐다. 그 술집 주인이 정비사업을 찬성했거든. 난 반대했고. 서로 마주치면 다툴 때도 있어서 피하느라 그랬지.”
이동훈(가명)씨는 “재개발 건에 대한 입장 차 때문에 오랜 이웃과 대화를 못 한 지 10여년이 되어간다”며 “외부에서 재개발로 돈을 벌 수 있다며 기대감만 증폭시켜 놓고는 정작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재개발을 찬성해온 한 주민은 “큰 주택이 있거나 다세대 빌라를 소유한 사람들은 재개발 후 임대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기 때문에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나는 작은 평수의 빌라에서 거주 중이다. 재개발만 잘되면 새 아파트에 입주하거나 분양권을 팔아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건데 돈 좀 더 있는 이웃이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해보고자 총대를 멘 이도 결국 주민들이었다. 2013년 주민 일부가 서울시에 성북3구역 정비사업이 진행된 뒤의 사업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던 그들은 사업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면 찬성 쪽에 힘을 실어줄 생각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의 성북3주택재개발정비구역 실태조사를 보면, 성북3구역에서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성북3구역 지정사업에 대한 사업성은 57.17%였다. 당시 실태조사 담당자였던 서울시 관계자는 “쉽게 말해 100원을 투자하면 57원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업성이 없는데 성북3구역 일부 주민은 실태조사를 보고서도 여전히 재개발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굳건히 존재해왔던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이 있다 보니까 ‘재개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입장 차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 일부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이웃 간 가족처럼 지내며 동네를 내 집처럼 아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성북동 토박이 노정순(54)씨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2015년 성북3구역에서 골목축제를 열고 서울시 지원을 받아 꽃길 만들기를 하는 등 재개발을 둘러싼 온도 차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재개발 진행 시 사업성이 없다는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도 믿지 못하는 건 이웃 간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며 “갑작스러운 정비 사업으로 상처만 남은 동네를 화합으로 이끌어갈 아이디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2015년 서울시 성북3구역 주민들이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대학을 수료한 뒤 박원순 시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노정순씨 제공
그를 비롯한 주민 20여명은 지난해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관련 교육도 수료했다. 노씨는 “우리가 전문가로서 노후화된 동네를 잘 재생시킬 테니 정비사업 해제하라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 교육을 이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성북3구역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3년 만인 지난달 24일 서울시로부터 직권해제 대상 구역으로 선정됐다. 사업시행인가(2011년 5월31일)로부터 4년 이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않았고, 주민 의견조사 결과 사업 찬성자가 50% 미만이란 이유에서다.
“오순도순 살게 내버려둬라”
지난 2월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에서 한 시민의 자해 소동이 일어났다. 칼을 소지한 남성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향하다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성북구의 또다른 재개발 구역에서 추진위원장을 지냈던 이 남성은 서울시의 정비구역 직권해제 이후 그동안의 사업비 보전 문제로 사건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재개발·재건축은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산권이 직접적으로 걸린 주민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약 15년 전 우후죽순으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구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 뉴타운, 정비사업 구역을 지나치게 지정한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지정만 해놓고 후속 처리가 이어지지 않자 사업은 자연히 삐꺽댔다. 이에 후임 박원순 시장이 2012년부터 직권해제를 들고나왔다. 일종의 출구전략을 편 것이다.
직권해제란 주민 간 갈등과 사업성 저하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사업 구역을 해제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에 따르면 자연경관지구, 최고고도지구, 문화재 보호구역,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등이 포함된 구역은 직권해제가 가능하다.
재개발 구역 지정부터 직권해제까지 13년 동안 성북3구역엔 무엇이 남았을까. 공동체는 쪼개졌고 심신은 망가졌다. 그사이 큰 병을 앓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이웃 간 불화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탓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박희찬(72)씨는 얼마 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재개발로 이득을 취하려는 외지 투자자와 손쉽게 기반시설을 확보하려는 자치단체 때문에 동네가 망가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며 성북3구역 지정구역 철회를 주장해오다 건강이 상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동네 전체가 불화에 시달렸다”며 “사실상 그 세월을 도둑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신정숙씨도 최근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그는 “고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가족 같던 이웃과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지자 몸이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폭풍의 흔적은 짙다. 정비구역 해제 공고 뒤에도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정비구역 해제 절차(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 의견 청취→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해제 고시)를 마무리해야 하고, 함께 살아갈 주민들 사이의 상처도 치유해야 한다.
서울시 정비구역 중 절반 가까운 곳이 해제(올해 3월말까지 683곳 중 328곳)되면서 이후 대책이 마련됐는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 구역에는 재개발 추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까지 막대한 사업비가 사용됐다. 성북3구역 직권해제에 따라 매몰비용 70억원이 발생했다고 조합은 주장한다. 서울시는 직권해제 유형에 따라 70%에서 100%까지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구역이 해제된 지역에서는 그간 지출한 사업비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며 “보조금과 더불어 이들을 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 차원의 적극적 지원 필요”
주민들과 정비구역 해제 뒤의 대안을 찾아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심 교수는 “지난 10년간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주택의 노후화 정도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직권해제하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2년부터 추진해온 뉴타운 재개발 수습 대책에 따라 주민 뜻대로 사업 추진 또는 해제 등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했으나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는 구역이 많이 남아 있다”며 “해제된 구역은 주거재생사업, 주거환경관리사업 등 다양한 대안사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주민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재개발·재건축은 전 재산을 건 도박과도 같다. 시공사들의 불법수주전, 공동체 파괴와 주민 간 소송, 원주민의 내몰림, 세입자의 철거민 전락 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은 그 과정을 밑돌 삼아 경제지표를 끌어올려왔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면 ‘보통 시민’이지만 그것도 못하면 ‘바보’가 되는 사회가 지금의 부동산 불패 신화의 현주소다. 한국 사회의 이 ‘흔한 과정’을 겪고 되돌아온 곳에 성북3구역의 오늘이 있다. 박희찬씨는 호소했다.
“이제 아파트는 포화 상태다. 주택을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게 해달라.”
서울시 뉴타운·재개발 등 정비구역에 대해 주민 요구로 직권해제를 추진할 수 있는 기한이 올해 말 종료된다. 박원순 시장 취임 뒤 2012년부터 서울시가 본격 추진해온 뉴타운 출구전략이 5년여 만에 사실상 마무리된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