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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치매 독거노인들 ‘공포의 여름나기’

등록 2017-08-08 06:11수정 2017-08-10 09:19

폭염·장대비에도 문 걸어닫고 ‘끙끙’
“모두 나 죽기만 기다리는 것 같아”
치매 독거 노인 9만여명 이상 추정
경증이면 장기요양보호 서비스 받기 어려워
보건복지부 “치매안심센터 250여곳으로 확대”
철제로 된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집 안의 열기가 ‘훅’하고 밖으로 쏟아졌다.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현관문과 부엌 창문을 비롯해 집 안 모든 환기구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어르신, 현관문 좀 열어놔도 돼죠? 창문도 좀 열게요.” 종로구 치매지원센터 봉사자 이아무개(70)씨의 말에 김지영(가명·71)씨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 창이 활짝 열렸다. 3일 만의 환기였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김씨의 5평 남짓한 집은 ‘찜통’을 방불케 했다. 김씨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으면 창문과 현관문을 절대로 열지 않는다. “뉴스에서 미세먼지가 심각하다고 하니 무서워죽겠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외출도 하지 않는다. 남편과 이혼한 뒤 함께 살았던 아들네 가족은 몇 년 전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는 선풍기 없고 환기도 안 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3㎡(1평) 남짓한 방안에서 온종일 홀로 지낸다.

치매로 인지능력이 저하되다보니, 여름철 재해에 제대로 대응하는 게 어렵다. 지난 6월 장대비가 쏟아졌을 때 천장에서 빗물이 새 부엌 바닥이 물바다가 됐다. 어떻게 대처해얄지 막막했던 김씨는 부엌에 신발을 벗어두고 안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근 채 이틀을 지냈다. 봉사자 두 명이 이를 발견하고 나서야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다. “그냥… 모르겠어요. 모두가 나 죽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말이 없던 김씨가 고개를 떨궜다.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고 있는 치매 독거노인 김지영(가명)씨가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이날, 김씨는 집안 모든 환기구를 닫아 놓은 채 겨울용 털이불을 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고 있는 치매 독거노인 김지영(가명)씨가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이날, 김씨는 집안 모든 환기구를 닫아 놓은 채 겨울용 털이불을 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홀로 살면서 치매까지 앓는 ‘치매 독거노인’에게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다. 인지능력·상황대처능력이 떨어져 여름철 무더위·수해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독거 치매 노인에겐 인근에 경로당을 비롯한 무더위쉼터가 있어도 ‘그림의 떡’이다. 관절염 등 노인 질환까지 겹쳐 거동이 힘들고, 치매 노인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지내는 치매 독거노인 최순자(가명·82)씨는 ‘선풍기 한 대로 버틸 지언정 경로당은 가기 싫다’고 말했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서다. “치매약 먹는다고 얘기 안해요. 말이라도 한번 잘못하면, ‘정신빠진 소리한다’고 할까봐. 자식없다는 얘기도 안하고, 그냥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다고 둘러댔어.”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노원구 치매지원센터의 봉사자 두 명이 할머니의 유일한 말 벗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노원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최순자(가명)씨가 치매·당뇨약 봉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씨는 “더위를 너무 많이 타서 현관문과 창문을 열어뒀다가, 현관문을 닫는 것을 깜빡해 밤새도록 문을 열어둔 채 지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노원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최순자(가명)씨가 치매·당뇨약 봉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씨는 “더위를 너무 많이 타서 현관문과 창문을 열어뒀다가, 현관문을 닫는 것을 깜빡해 밤새도록 문을 열어둔 채 지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주거형태를 ‘독거’로 답한 65살 이상 치매 환자수는 전체 치매 환자의 13.4%로 7만2400여명에 달했다. 이 수치를 현재 치매 환자수(72만4857명)에 대입했을 때 9만명 이상의 치매환자가 독거형태로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치매 유병률이 그대로라고 해도, 초고령 노인수가 증가한 데다 독거 형태로 거주하는 노인수도 늘고 있어 현재 독거치매 노인수도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나 최씨처럼 경증 치매 환자들이 누군가의 ‘방문’을 받는 건 쉽지 않다. 치매 환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따라 요양기관에 입소하거나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쓸 수 있다. 하지만 신체 기능을 중심으로 등급 판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경증 치매 환자는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 치매지원센터나 구청의 돌봄 서비스도 일부 독거노인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치매국가책임제’ 기조에 따라서 올해 말 치매지원센터 등 치매안심센터를 250여곳으로 확대하고 치매 관리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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