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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세요” 한 네팔 노동자의 죽음

등록 2017-08-09 15:45수정 2017-08-09 22:07

지난해 한국 온 20대 이주노동자
7일 새벽 공장 기숙사서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유서엔 “다른 공장도 못 가, 네팔 가서 치료도 못 받아”
회사쪽 “회사 옮기고 싶다 말한 적 없어…
‘네팔 돌아가고 싶다’고 해 그렇게 하자 협의”
시민단체 “고용허가제로 인한 죽음”
케샤브 슈레스타(27)가 지난 7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유서. 사진 청주청년이주민인권모임 이주민들레 제공.
케샤브 슈레스타(27)가 지난 7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유서. 사진 청주청년이주민인권모임 이주민들레 제공.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지난 7일 새벽 충북 충주의 한 부품 제조업 공장 기숙사에서 한장의 편지가 발견됐다. 이날 새벽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된 네팔 이주 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타(27)의 유서였다. 그는 스프링 노트에는 삐뚤빼뚤 적어 내려간 네팔어로 세상에 작별인사를 건넸다.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슈레스타는 지난해 초 한국에 들어왔다. 결혼한 지 고작 3~4개월이 흘렀을 때다. 부인과 여동생이 한국으로 떠나는 슈레스타를 배웅했다. 부품 제조 공장에 취직한 뒤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로 1년 7개월 일했다. 그러나 3~4개월 전부터 극심한 불면증을 앓았다. 5월께 주간 근무만 하도록 근무 패턴을 바꿨지만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늘어갔다. 슈레스타와 가까웠던 네팔 노동자 ㄱ씨는 “조용해서 잠이 잘 올 만한 공간을 슈레스타에게 빌려주기도 했지만,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와 이주노동자 쉼터 ‘청주네팔쉼터’을 종합하면, 지난주 슈레스타와 회사는 두 차례 만났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먼저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은 뒤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싶다”는 그에게 회사쪽은 “팀을 옮기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슈레스타가 이를 거절하자 “네팔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절차를 밟기 위해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슈레스타는 “삶의 의미가 없다.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고 호소하며 7일 새벽 3시까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아침 슈레스타가 아침 체조 시간에 보이지 않자 찾아 나선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유서 말미에 네팔에 남겨둔 가족을 언급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어요.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7일 충북 충주 한 공장 기숙사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된 네팔 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타(27).
지난 7일 충북 충주 한 공장 기숙사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된 네팔 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타(27).
슈레스타의 죽음은 충북 청주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청주네팔쉼터’를 운영하는 판데이 수니타(40)가 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청주청년이주민인권모임 ‘이주민들레’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이주민들레와 수니타는 게시글에서 “고용허가제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궂은일과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아파 회사를 바꾸거나 잠시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회사 외국인 관리팀에서는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고용허가제에 해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회사가 좋지 않아도 제도적으로 마음대로 회사를 옮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제한돼있다. 3년 동안 회사를 세 번 옮길 수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사용자의 승인이 있거나 임금체불과 같이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회사쪽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슈레스타가 회사를 옮기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 ‘회사 그만두고 네팔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그럼 7일에 노동부 신고 절차를 밟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어두는 등 관련 절차를 논의해보자는 뜻을 전달한 상태였다. 회사에 고향에 다녀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허락을 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6월에 수니타가 전해 들은 네팔 노동자의 부고 소식만 모두 6건에 달한다. 지난 5월 20대 청년 두 명은 경북 군위군 한 돼지농장에서 정화조를 청소하다 분뇨 가스에 질식해 숨졌고, 경남 거제 지역 한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은 4층 높이에서 떨어져 세상을 떴다. 한 명은 자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중 두 명은 사업장을 바꾸려다 사업주가 이를 허락해주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니타는 “일하다 죽는 사람도 많고 고용허가제의 허점으로 사업주와 갈등을 빚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다. 결국 스트레스를 이렇게 많이 받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번엔 또 유가족에게 어떻게 부고 소식을 전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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