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대표, 10일 영장심사 불출석
실적 튀겨 수백억대 대출받은 혐의
앞서 뇌물혐의 전 본부장 영장도 기각
법조계 “검찰 수사 부족했다는 의미”
실적 튀겨 수백억대 대출받은 혐의
앞서 뇌물혐의 전 본부장 영장도 기각
법조계 “검찰 수사 부족했다는 의미”
검찰이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 수사가 연일 ‘항로’에서 이탈하는 불안한 운항을 이어가고 있다. 수사 개시 이후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피의자는 잠적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1호 수사가 시작부터 ‘이상기류’에 휩싸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검찰과 법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날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정됐던 카이 협력업체 대표 황아무개씨가 영장심사에 나오지 않았다. 카이에 항공기 날개 부품 등을 공급한 실적 등을 부풀려 은행에서 수백억원대 불법 대출을 받는 등 혐의가 무거운 황씨가 갑자기 잠적한 것이다. 검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검찰 관계자는 “황씨의 경우 연락이 안 돼 구인장 집행을 시도하고 있다”며 “(조사 기간에는) 황씨가 변호인을 선임해 변호인 동석하에 조사도 받고 했기 때문에 영장심사에 불출석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서 황씨는 카이의 장비개발팀 이아무개 부장에게 납품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빼돌린 회삿돈 3억원을 건넨 혐의(횡령·배임증재)로 지난 1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바 있다. 또 구속돼 재판을 받을 경우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주 우려 등을 사전에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검찰은 황씨에게 돈을 받은 이 부장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현금 총 3억원을 차명계좌로 받은 혐의로 카이 전 생산본부장 윤아무개씨의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영장 기각에 이은 피의자 잠적 탓에, 검찰은 방산비리의 큰 그림을 보여줄 ‘퍼즐 조각’을 확보하는 데에도 애를 먹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아왔던 ‘저인망식 시간끌기 수사’, ‘별건 압박수사’ 등의 관행을 바꾸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인사는 “기업에서 관련 자료를 수백 상자씩 압수하며 공개수사를 한 지 한 달이 됐는데, 정작 검찰이 카이의 어떤 비리를 수사하는지 모르겠다”며 “빠른 시간에 정확히 ‘환부’를 도려낸다는 특별수사의 지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2014년 12월 카이 경영진 비리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벌이다 이를 검찰에 넘겼으나, 검찰은 최근에야 카이 임직원을 소환하는 등 뒤늦게 수사를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비자금 조성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손승범 전 카이 인사운영팀 차장도 1년째 도주 중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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