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급택시 기사 지원자가 고급택시 기사 전문 교육 과정에서 도어 서비스 교육을 받고 있다. 카카오 제공
▶ 여성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택시기사에게 느끼는 심적 불편함에 대한 후일담이 올라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택시기사가 남성 승객에게는 말을 잘 걸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여성 승객은 언제나 택시기사의 대화 상대가 된다” “편하게 이동하고 싶어서 택시를 탔지만 그때마다 기사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버스를 이용하게 됐다” 따위의 경험담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내에 도입된 고급택시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월평균 약 4.4%씩 성장했다고 합니다. 성장 배경에는 여성 승객이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 2월 여자 승객이 잠든 사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택시기사에게 최근 중형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희중 부장판사)는 7월2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아무개(56)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해자는 택시에서 잠든 사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며, 살기 위해 달아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나이에 소중한 생명까지 빼앗겼다”며 “피의자는 이 사건을 통해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의 안전성에 대한 공적인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시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야기해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중형이 선고된 데 대해,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교통에서 여성이 느끼는 신변 위협을 이전보다 무게감 있게 바라보게 된 사회적 시선이 반영된 결과”라며 “그만큼 그동안 택시 안에서 벌어진 성희롱 및 성폭력 사건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택시 탈 때 공감’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누리꾼(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한 20대 여성 승객이 택시에 탑승한 뒤 차내에 배치된 기사 면허증 사진과 택시기사의 얼굴이 다른 것 같다고 느끼고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내용이다. 택시기사를 경계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여성 승객은 택시기사가 휴대전화로 딸의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영상을 본 누리꾼 다수는 “한국 여성이 평소 택시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불안감을 잘 담았다”고 평했다.
이와 비슷한 공감대는 여성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진다. 주로 택시를 이용할 때 느끼는 심적 불편함에 대해서다. 해당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택시기사가 남성 승객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여성 승객은 언제나 택시기사의 대화 상대가 된다” “편하게 이동하고 싶어서 택시를 탔지만 그때마다 기사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버스를 이용하게 됐다”는 경험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택시 이용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
물론 모든 택시기사를 검은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 그럼에도 유독 택시 이용과 관련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여성 승객들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성차별에 대한 시민 감수성이 제고된 결과 그간 여성이 택시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수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며 “실제로 여성이 택시 안에서 승객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손쉬운 대화 상대로 홀대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성 승객이 동승했을 때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 활동가는 이어 “택시기사의 직간접적인 간섭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성별에 기인하는 차별인 ‘길거리 괴롭힘’으로 정의될 수 있다”며 “밀폐된 공공장소인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을 상대로 한 괴롭힘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제보된 피해 사례 일부다.
대학생 이혜희(가명·23)씨는 최근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이태원 근처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조수석에 앉은 이씨에게 택시기사는 “왜 이런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느냐. 아버지가 걱정 안 하시냐”면서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의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바지의 찢어진 틈으로 불쑥 택시기사의 손이 들어오자 당황한 이씨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그간 택시에서 벌어진 수많은 성폭력 살인 사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더 이상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1월 직장인 오지은(가명·28)씨도 택시 안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택시를 타자마자 택시기사가 대뜸 “결혼은 했나” “치아 교정 비용은 남자친구나 남편이 내주나”며 사적인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씨는 “치아 교정과 남편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불쾌감을 표했으나 택시기사는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치아 교정을 하면 키스는 어떻게 하나?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할 때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나”고 집요하게 되묻더니 “내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러는데…”라고 덧붙였다. 그 순간 오씨는 차를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낮 시간이었고 붐비는 도로였기 때문에 바로 내릴 수 있었다”며 “만약에 늦은 시각에 달리는 택시 안이었더라면 엄청난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택시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괴롭힘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된 대상은 여성이었다. 2015년 9월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500명(남성 758명, 여성 7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밤늦게 택시를 탈 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가”라는 질문에 성인 여성의 약 70.5%가 두렵다고 답했다. 성인 남성의 경우 같은 질문에 “두렵다”는 답변이 약 12.6%에 불과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최근 국내 택시시장에서 감지되는 흐름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내 택시 호출 앱 및 고급택시 사업 성장세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택시 승차 때 ‘안전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여성 승객들의 ‘니즈’(욕구·필요성)가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실제로, 카카오택시는 2015년 3월 출시된 뒤 2015년 한 해에만 21만명의 기사 회원을 확보했다. 21만명은 국내 전체 택시 기사의 85%에 이르는 규모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카카오택시 호출 건수는 하루 평균 70만건, 누적 기준 8천만건에 달했다. 택시 이용의 편리함뿐 아니라, 안전성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카카오 커뮤니케이션팀 쪽도 카카오택시의 성장 원인으로 ‘안전성’을 꼽았다. 윤승재 카카오 커뮤니케이션팀 매니저는 “승객이 승차 시마다 해당 택시기사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승객의 부정적인 평가가 누적될 경우 해당 기사는 카카오택시 앱을 영구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며 “자격이 안 되는 기사들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승객에게 ‘안전한’ 택시를 탈 수 있다는 신뢰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승객 불안이 고급택시 성장동력
카카오는 카카오택시의 성공을 계기로 지난해 초 ‘고급택시 서비스’(카카오택시 블랙)마저 내놓았다.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고급택시기사 교육업체 하이엔과 카카오가 협력해 3000cc급 고급 차량 약 100대와 고급택시 기사 교육을 수료한 200여명의 기사가 카카오택시 블랙 서비스에 투입됐다. ‘고급택시 기사 1기’의 경우 평균 5 대 1 경쟁률의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쳤다. 일주일 교육 후 실무 투입 자격을 얻는 인원이 10%로 제한될 만큼 문턱이 높았다.
눈여겨볼 점은 카카오택시 블랙의 성장률이다. 카카오 쪽에 따르면 카카오택시 블랙은 이용자 수를 기준으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월평균 4.4%씩 성장했다. 전체 7개월을 놓고 보면 약 30%쯤 증가한 수치다. 김진규 하이엔 대표는 고급택시를 이용하는 여성 승객 증가를 성장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고급택시 기사 62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한 결과 ‘9시 이후 밤 시간대 고급택시를 이용하는 20~30대 젊은 여성 승객이 늘었다’고 답한 이가 59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서비스 교육을 받은 고급택시 기사들이 여성 고객과의 시선 처리, 골목에서 고객이 목적지까지 안전히 도착할 때까지 대기 등 안전 서비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성 승객에게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급택시 기사가 되려면 음주운전 경력 등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고 서비스직 접합 여부를 따지는 인성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최종 면접 합격 후에는 2주간 고급택시 전문기사 교육도 받아야 한다. 교육 매뉴얼에 따르면 고급택시 기사는 신호 위반과 과속을 할 수 없고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급택시 기사 김용운(57)씨는 “여성 승객은 최대한 집 앞까지 모시려고 노력한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라면 승객이 집 앞에 안전히 도착할 때까지 뒤에서 지켜본다”며 “여성 승객이 차에서 내릴 때는 시선 처리에 신경 쓴다. 실수로 다리나 상체를 봤다가는 여성 승객이 ‘시선 폭력’을 당했다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한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급택시를 타보니’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여성 누리꾼은 “택시를 타기 전에는 항상 심장이 뛰었다.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사가 말을 걸면 이내 곧 불쾌해지는 경험을 자주 했기에 ‘왜 내 돈 내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차를 타야 하는가’ 답답했다”며 “대학생 신분이라 재정 상태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대중교통이 끊긴 밤, 새벽에는 반드시 고급택시를 탄다. 일반택시보다 약 2~3배 택시비가 높게 나오지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안전히 귀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노선이 활동가는 “여성은 사회적 편견에 기인한 여성혐오적 시선에 여전히 노출돼 있다. 그 결과 택시 한 대를 탈 때에도 마음을 졸여야 한다”며 “안전함을 위해서 남성 승객에 비해 돈을 더 내면서 고급택시를 타야만 하는 현실이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적 시선과 차별적 태도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관련 정책뿐만 아니라 공교육 이후에도 꾸준히 직장인을 상대로 한 성교육이 실시돼야 하며, 승객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태도를 보인 기사에 대해서는 페널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효성 있는 페널티 찾아야
익명을 요구한 한 택시업체 대표는 “아마도 대부분의 택시업체에서 여성 승객을 올바르게 대하기 위한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며 “법인택시, 개인택시의 약 80% 이상이 호출 앱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승객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하더라도 호출 앱 서비스만 영구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뿐이지, 기사직을 영구적으로 그만두게 하는 제도는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카카오 택시 앱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부적절한 태도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기사에 대해서 낮은 평점을 매길 수 있는 ‘만족도 조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과연 승객들이 매긴 평점에 따라 페널티를 받은 기사는 있을까? 카카오 쪽은 “승객들의 경고 횟수가 누적될 경우 카카오택시 앱 서비스를 영구적으로 이용 정지시키는 페널티를 운영 중”이라며 “다만 경고 횟수와 경고 기준이 되는 평점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단순 경고만 있고 현실적인 대책은 아니’라며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은 “현재 택시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카카오택시 등 택시 호출 서비스 업체에서는 승객이 기사의 부적절한 행동들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을 때 단순 앱 사용 영구정지 조치에만 그칠 게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택시업체에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진보해도 의식과 제도의 진보가 뒤따르지 않을 때 택시를 타는 여성들은 언제까지나 두렵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