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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교수가 관상 보냐고요? 책 쓰려면 실전 경험도 중요”

등록 2017-08-27 19:13수정 2017-08-27 20:44

【짬】 관상 연구하는 인문학자, 백수진 교수

백수진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백수진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계명대 중국학과 백수진(56) 교수의 서가엔 900여권의 ‘관상 책’이 꽂혀 있다. 대부분 ‘관상 선진국’인 대만이나 홍콩에서 출간된 책이다. 7년 전 한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관상학 수업을 들은 뒤 흥미를 느껴 사 모으기 시작했다. <관상 연구>(신승만, 1956)란 책을 보기 위해선 전남대 도서관을 세차례나 찾았다. 이 책은 한국의 첫 독자적인 관상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2년 이후엔 해마다 대만과 홍콩을 찾아 관상 대가들에게 개인지도를 받고 자료도 모았다. 그가 최근 펴낸 <관상수업-관상가를 위한 상법 교과서>(나들목)는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그를 지난 2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380여쪽 가운데 한국의 관상 역사와 관상 관련 책이 30쪽 정도를 차지한다. “이전의 우리 관상책을 보니 한국 관상사를 정리한 대목이 2쪽이 넘지 않더군요.” 이 말대로라면 백 교수는 한국의 관상사에 대한 기존 서술을 10배 이상 늘려놓은 셈이다.

그는 국내외 다양한 사료를 통해 우리 역사 속 관상의 자취를 보여준다. ‘백제인 왕인이 사람들의 상을 살필 줄 알았다’(<해동역사>)거나 ‘고구려 법사 혜량이 신라인 거칠부가 장차 장수가 될 상이라고 언급했다’(<삼국사기>)는 대목 등이 그렇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만의 독자적인 관상 전문서가 없었어요. 중국의 <마의상법>과 같은 책의 필사본만 돌아다녔죠.” 중국 책과 차별화된 독자적인 관상서가 나온 게 1950년대라고 했다. “관상가들이 많이 보는 <관상보감>(김철안, 1955)만 해도 한국 관상사에 대해선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들이 당에서 들여온 것 같다는 정도만 언급되어 있죠.”

지난 7년 관상책 900여권 모아
홍콩·대만서 ‘고액과외’ 받기도
한국 관상사와 관련 저술 살피고
현대 관상 흐름 정리한 책 펴내

“자신 알면 미래 운명 기대지 않아
절식, 신앙심 같은 마음도 ‘운’ 바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관상 보는 법’에서 국내외 여러 전문가들의 각기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람을 정면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귀인 ‘첩뇌이’ 항목을 보면 전문가 7명의 다양한 해석이 붙어 있다.

“사주 명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관상사 연구를 하거나 현대 관상 흐름을 보여주긴 힘들어요. 저와 같은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죠.” 그는 홍콩 원동대에서 중국어 문법으로 박사를 받은 뒤 42살 때 모교 교수가 됐다. 현대 중국어 독해와 회화가 자유롭다는 점이 관상사 연구의 강점이다.

연구 목적의 ‘실전’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나 웨딩박람회 현장의 사주 봐주는 부스 한켠에 의자를 놓고 관상을 봐준다고 했다. “홍콩의 관상 대가에겐 3시간에 60만원을 주고 배웠죠. 이런 교습은 제 실력을 테스트하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관상 책을 쓰려면 실전 능력이 있어야 해요.”

중국이나 일본엔 전해져 오는 독자적인 관상서가 있다. 왜 우리는 없을까? “유교가 지배한 조선 사회의 양반들은 관상을 정통 학문으로 안 봤죠. 하지만 생활 속에선 다 관상을 봤죠. <증보산림경제>(1766)란 농업서엔 ‘여자의 상을 보는 법’이란 제목 아래 ‘자식 없는 여자 상’ 등이 기술되어 있어요. 청혼하기 전에도 사람을 보내 처녀의 관상을 봤어요.”

이런 이중적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요즘 공무원 연수기관 등으로부터 강의 요청을 자주 받는다. “강의 제목을 ‘관상/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고 보내면 강연장엔 꼭 ‘얼굴 가꾸기’로 적혀 있어요. 공무원들이 관상으로 결재받기 어려워 그렇게 했겠죠.” 최근엔 대기업 노조 쪽의 강연 요청도 있었단다. “노사 협상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얼굴 표정을 알려달라는 주문이었죠.”

왜 관상에 빠졌을까? “남의 운명을 보는 게 재미가 있어요. 특히 들어맞히면 그렇죠.” 그는 대학 시간강사 시절이던 30대 초반부터 매년 한차례씩 사주를 봤다고 했다. 강사 생활을 언제 끝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공교롭게도 대운이 있다는 두 해에 전문대 교수, 대학 교수가 되었어요. 저는 사주가 맞았어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운명은 바꾸기 힘든데 운명을 이야기해야 하니 힘들어요.” ‘대학교수가 왜 음지의 학문을 할까?’라는 시선도 그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한의학에서 얼굴색을 보고 건강을 판별하는 망진(望診) 공부를 하고 있다. “망진의 전통이 끊겨가고 있어요. 얼굴을 보고 병을 진단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보람도 있죠.”

계획은? “이번에 낸 책을 보완해 한국 관상사를 제대로 쓰고 싶어요. 관상과 망진을 결합해 설명하는 관상서도요.” 대학 퇴직 뒤엔 관상 강의에 집중할 생각이다. “관상을 심리학과 연계해 가르치고 싶어요. 관상이 좋지 않더라도 마음을 바꾸면 내면의 행복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는 ‘관상불여심상’을 강조했다. 관상이 심상(마음)만 못하다는 것이다. “성공이나 출세도 모두 절식하는 게 그 시작과 끝이다.” 일본의 전설적 관상가인 미즈노 난보쿠(1760~1834)가 했다는 얘기다. “운명의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자기 노력으로 작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걸 개운이라고 하죠. 미즈노는 음식의 절제를 강조했죠.” 백 교수는 개운을 이루는 또다른 예로 신앙심을 들었다. “저도 사람을 봐가며 관상 얘기를 하죠. 신앙이 깊거나 자존심이 센 사람들에겐 얘기 안 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재물운 같은 게 없어도 신앙심으로 행복을 누리죠. 그들은 사주 관상을 안 봐도 됩니다.” 이런 얘기도 했다. “자신을 알면 자신의 운명을 알죠. 그러면 미래의 운명에 기대지 않아도 됩니다.”

‘과학으로서의 관상’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관상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한 ‘경험적 통계’이죠. 과학처럼 계량화, 객관화는 어려워요. 어느 단계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저도 열 사람을 봐서 아홉이 맞는다면 자신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여섯 정도만 맞으면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는 한국의 관상가들이 씨가 마르고 있다고 했다. “사주는 생년월일로 운명을 자세히 봅니다. 관상을 사주처럼 보려면 최소 2년 이상은 공부해야 합니다. 관상이 사주 명리의 보조수단 정도로 취급되는 이유죠. 한국에 관상만 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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