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미르 출연 등은 청와대 강압적인 측면 있어”
제3자 뇌물죄 인정된 ‘영재센터’ 지원액 판단과 달라
“같은 시기 지원된 두 거액, 판단 다른 건 모순” 지적도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응해도 된다는 건가?” 의문
제3자 뇌물죄 인정된 ‘영재센터’ 지원액 판단과 달라
“같은 시기 지원된 두 거액, 판단 다른 건 모순” 지적도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응해도 된다는 건가?” 의문
법원이 삼성이 낸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도 ‘대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두 재단은 ‘국정농단’ 의혹의 출발점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지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선고를 하면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 16억 지원은 유죄로 인정했지만, 같은 혐의가 적용된 미르재단 등 204억 출연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피고인들이 정상적인 비영리·공익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대통령의 지원 요구가 매우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며 “후원계약의 타당성이나 공익성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신속하게 집행된 점 등을 종합하면 대가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반면 미르재단 등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 등이) 최순실씨의 사적 이익 추구수단인 점을 알았다고 볼 수 없다. 재단 출연금 액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동적으로 정해졌고 청와대 주도로 이뤄진 출연 과정에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다”며 대가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선고 때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이 부회장과) 단독면담에서 승마, 영재센터,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지원을 요구할 당시 자신의 포괄적인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이익을 주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을 인식하면서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삼성이 영재센터에 지원한 시점은 2015년 10월과 2016년 3월로, 미르(2015년 11월)·케이스포츠(2016년 2월)에 출연한 시기와 겹친다. 영재센터와 미르재단 모두 삼성의 출연금이 적지 않고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같다. 이상훈 변호사는 “이 부회장 등이 최씨가 실세인 것을 알고 승마, 영재센터 지원을 하던 상황에서 유독 두 재단만 배후를 몰랐다고 보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김종보 변호사도 “미르재단 등 출연 기업을 피해자로 본 법원 판결은 기업이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응해도 탈이 없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정경유착 근절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이 부회장 항소심에 임하는 특검이나,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나서는 검찰 모두 미르재단 등과 관련된 뇌물 혐의 입증에 좀 더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재판부도 미르재단 등을 “최씨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이고, 박 전 대통령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개입했다”고 판단한 바 있어 뇌물죄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강요 혐의는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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