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로 부딪쳐 스마트폰 액정 수리비 요구
피해자만 200여명 달해…추가 피해자도 예상
여성 운전자 연락처 받아낸 뒤 교제하기도
피해자만 200여명 달해…추가 피해자도 예상
여성 운전자 연락처 받아낸 뒤 교제하기도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던 김아무개(45)씨는 이 길을 걷던 박아무개(40)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혹시 다쳤을까봐 내심 걱정했던 김씨에게 박씨는 “몸은 괜찮은데 스마트폰 액정이 망가졌으니 수리비를 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내심 안도하며 며칠 뒤 알려준 계좌로 15만원을 송금했다.
한 달쯤 뒤 같은 동네에 살던 친언니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 사고 위치까지 정확하게 똑같았다. 김씨 자매는 에스앤에스(SNS)에 올라온 박씨 사진을 본 뒤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스마트폰 수리비만 받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상습범인 걸 알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예상대로 여성들만 대상으로 스마트폰 수리비를 받아 챙겨 온 이른바 ‘손목치기’ 상습범이었다. 피해자만 200여명, 액정수비리로 받아 챙긴 돈만 2400여만원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에게 액정수리비를 입금한 사람이 900여명, 피해 추정액은 1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해 범행 일부만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78%, 156명)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가 나면 박씨는 부딪힌 팔을 툭툭 털며 운전자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손이나 팔은 괜찮은데 스마트폰 액정이 망가졌다”며 수리비를 요구했다. 또 현장에서 돈을 받아가기보다는 연락처를 교환한 뒤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신용불량자였던 박씨는 매번 친동생의 이름을 댔고, 수리비도 동생 명의의 은행계좌로 받아 챙겼다.
특히 박씨는 여성 운전자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서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 마시자”고 해 접근했고, 한 20대 피해자와는 실제로 6개월 가까이 교제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사단법인에서 일을 도와주며 이따금 월급을 받기는 했지만, 생활비로는 부족했다”면서 “돈도 필요했고 여자도 만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통신자료 및 계좌 추적을 통해 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또 사고 현장에서 현금으로 지급한 피해자도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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