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뉴스분석 왜?
‘이재용 징역 5년’에 담긴 판사들의 논리
‘이재용 징역 5년’에 담긴 판사들의 논리
‘이재용 재판부’는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고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부분 중 일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거나 항소심 판사가 작심하고 작량감경에 나선다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판사들은 대부분 똑똑합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법조계를 지탱하는 ‘법조 3륜’이라고 말하지만 검사나 변호사보다 판사에게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 똑똑한 판사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위(권한)를 특정인, 특정 계층만을 위해 쓴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5~45년 중 ‘징역 5년’ 선고
“승계작업, 회사에도 이익” 궤변
수동적·강압적 뇌물이라며 ‘선처’ 판사 스스로 ‘가진 자’에 편입돼
부자들의 논리와 이익만 대변
‘양쪽’ 눈치보며 진실규명 뒷전
“교만 버리고 법에 따라 판결해야”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보통 시민의 생각은 그러한데, 판사들 눈엔 다른 무언가가 더 보이는 걸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가 4개월간의 재판 끝에 내린 결론은 징역 5년이었다. 혐의 중 일부는 무죄로 판단했고 봐줄 만한 사정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였다. 이 부회장의 판결문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징역 5년을 미리 정해놓고 설계한 각본 같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김진동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이 실제로 징역 5년을 목표로 판결을 짜맞췄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판결 역시 그들만의 ‘회로’가 작동해 내린 결론이라는 합리적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판결문에서 밝힌 양형 사유와 유무죄 판단 근거 등을 근거로 판사들의 ‘뇌 구조’를 추적(?)해 보았다. ①가진 자를 향한 무한 ‘공감’ ‘이재용 재판부’가 판결문 양형 이유에 두번이나 언급한 이 부회장의 봐줄 만한 사정은 이렇다.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을 위해 진행된 승계작업과 지배구조 개편이 회사에도 이익이 됐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이 회삿돈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는데, 그렇게 진행된 승계작업의 결과 회사에도 (일말의) 이익이 됐으니 이 부회장의 처벌을 좀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맞는 말일까? 선고 3일 뒤인 8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주최로 ‘이재용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좌담회가 열렸다. 경제개혁연대 이상훈 변호사는 이 대목을 지적했다.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정비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자기가 들어갈 집에 하자가 있어 미리 리모델링을 한 것인데, 이러한 리모델링은 곧 들어갈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즉,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지배주주의 그룹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를 감형 사유로 해선 안 된다.” 여기서 지배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변호사는 또 “지배구조가 개선되거나 단순화하면 주식 가치가 올라가고 회사 가치가 덩달아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의 경우, 그 이득이 이재용 개인이 누린 이득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나? 경영권 승계라는 이재용 개인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감형 사유로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유죄는 인정하되 피고인을 향한 무한한 애정으로 최대한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법원의 악습은 낯설지 않다. 그 사례는 셀 수 없지만 2009년 8월14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창석, 현 대법관)가 내린 판결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피고인은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원심에선 면소(무죄) 판결했던 227억원 배임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지만 1심 판결인 집행유예가 유지됐다. 양형 이유 중 일부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배임 행위가 있은 후… SDS의 발전에 피고인들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보여지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책임 감소사유로서 고려될 수 있다.” 이건희 회장과 그 가신들이 이재용씨에게 헐값에 삼성에스디에스(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몰아줘 회사에 손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아들에게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저지른 범죄의 처벌 수위를 판단하면서 ‘회사가 이후 발전했으니 죗값을 덜어주겠다’고 한 셈이다. 그 회사가 성장해서 오른 주식의 가치는 결국 이재용씨의 이익이 되었다. 판사들이, 국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이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판사들의 사고방식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대기업 총수의 손을 들어줬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죗값을 묻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게 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왜 판사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가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판사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한 변호사의 진단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은 있다. “검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판사 대부분이 부잣집과 결혼한다. 아니면 부잣집 자녀들이다. 원래 부자였기 때문에 친부자적인 판결을 하고, 부잣집 사위가 됐기 때문에 친부자적인 판결을 한다. 서민의 주거 불안이나 노동자의 고용 같은 걱정은 모르고 사는 이들이다. 친재벌 논리로 피고인들을 봐주게 되는데, 이 친재벌 논리가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는 논리와 차이가 없다. 결국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때문에 봐주기 양형을 남발하는 것이다.” ②나는 전지전능한 사람 아무런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언제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리수를 남발하기 마련이다. 이재용 재판부는 삼성이 케이(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기부한 204억원을 무죄로 판단했다.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 근거로 △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출연금 액수는 전경련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는 등 적극적·능동적이지 않았고 △모금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던 점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김성진 변호사는 “재판부의 근거는 예외 없이 하나도 대가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제삼자 뇌물죄에서 뇌물의 수혜자인 제삼자의 성격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 부회장 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든 몰랐든, 최순실이 실제로 존재했든 아니했든, 대통령이 재단에 기부하라는 요구를 했고 삼성이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바라고 이에 응했다면 뇌물죄가 성립한다. 적극적이냐 수동적이냐 여부 역시 뇌물죄의 판단 근거가 아니다. 뇌물 사건 중엔 공무원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한 경우가 다수다. 수동적이니 강압적이니 하는 요인들은 양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유가 될 수 있을지라도 유무죄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럴듯해 보이는 양형 인자를 유무죄 판단 근거로 삼아 무죄를 선고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재판부는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를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 인자로도 활용했다. 대법원 양형기준 중 뇌물공여 항목을 보면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는 형의 감경요소에 해당한다. 감경요소가 있다면 가중요소도 있게 마련이다. 뇌물공여의 가중요소는 ①적극적 증뢰(제공) ②청탁 내용이 불법하거나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 ③피지휘자에 대한 교사가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②와 ③이 해당될 텐데 재판부는 반영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횡령죄 양형에서도 가중요소가 7개에 이르지만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③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을까… 이 부회장 판결문은 간단히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①대통령 압박으로 뇌물을 줬다. ②뇌물을 달라고 한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다. ③그래서 이재용은 좀 봐주겠다. ①과 ②는 일반 시민들을 향한, ③은 삼성을 향한 ‘손짓’이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으냐’는. 판사들도 사람인지라 비판과 비난을 싫어하긴 한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을 ‘짜내려’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흔적들은 그 고심이 도를 지나친 결과다. “이재용은 승계작업의 성공으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사람”이라는 말과 “승계작업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이 양형 이유에 함께 등장한 배경을 보통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행여라도 비판이 일찍 등장하면 ‘남탓’을 하기도 한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날 ‘형량이 적다’는 비판이 나오자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뇌물 혐의 가운데 유죄가 인정된 부분이 89억원이고 무죄가 된 부분이 343억원이다.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표현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앞서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형사공보판사의 말은 이런 뜻을 담았다고 보인다. ‘특검은 12년을 구형했고 그 12년은 모든 혐의가 유죄일 때 해당된다. 그런데 뇌물액의 절반 이상이 무죄 선고가 났으니 12년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징역 5년이면 적당한(적지 않은) 것 아니냐.’ 만약 특검이 징역 24년을 구형했다면 법원이 징역 10년을 선고했을까. 검찰의 구형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절차다. 우리 형사소송법엔 “검사는 사실과 법률 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판사의 판단에 아무런 구속력도 지니지 않는다. 이런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판사들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판사들의 이런 성향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숙명’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기본 속성상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피하려 하다보니 ‘아니라고 볼 것은 아니다’는 식의 부정의 부정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 문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저 양극단을 모두 고려한” 결과 진실 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이다. 가진 자 편에 선 판사들의 교만과 무책임한 태도가 지속되면 결국 피해는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준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는 법에 따른 판결을 하면 된다. 기업을 생각하고, 나라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건 판사들의 교만이다. 반칙하는 사람들을 단죄하기 위해 사법부가 존재하는데 판사들이 그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부회장의 판결이 나온 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주는 ‘3·5법칙’이 실행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재판부는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고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부분 중 일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거나, 항소심 판사가 작심하고 작량감경에 나선다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사들은 이미 ‘그림’을 그리는 중일 것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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