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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N잡러’를 꿈꾸는 당신에게

등록 2017-09-03 09:49수정 2017-09-03 09:51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직장생활
불안한 미래, 커리어 향한 욕망
다른 일에 대한 호기심은
나를 ‘4.5잡’으로 이끌었다

수입 늘어 삶의 질 높아졌고
‘쓸모 있는 인간’ 되었지만
‘워라밸’ 무너지는 건 한순간
내 시간 가져야 ‘번아웃’ 피해
엔(N)잡러란 여러 수를 의미하는 N과 잡(job),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표현(er)이 한데 붙은 신조어다. 생계를 위해, 미래를 위해, 워커홀릭 성향 탓에 청년층에선 N잡러가 생겨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엔(N)잡러란 여러 수를 의미하는 N과 잡(job),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표현(er)이 한데 붙은 신조어다. 생계를 위해, 미래를 위해, 워커홀릭 성향 탓에 청년층에선 N잡러가 생겨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N잡러 생존기

지금 너무 바쁘다. 여러 일이 한 시기에 한꺼번에 몰렸다. 수정해야 할 글이 몇개인가, 새로 써야 할 글은 또 몇개인가. 내일은 3시부터 촬영이 있는데. 촬영 구성안 확인은 언제 하지. 그래도 일단 우선 가장 급한 건 <한겨레> 글이다. 지금은 밤 10시, 마감까지 몇시간이 남은 걸까. 급한 마음에 맥주만 들이켠다. 한겨레 토요판 ‘이런 홀로’에 엔(N)편째 글을 쓰고 있는 혜화붙박이장은 사실 ‘N잡러’다. N잡러란 여러 수를 의미하는 N과 잡(job),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표현(er)이 한데 붙은 신조어다.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추측할 수 있듯이 N잡러란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굳이 투잡(two job)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는 이들은 보통 세 가지 이상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변의 젊은 사람들 중 몇은 N잡러를 자처한다. 근무 형태가 유연한 스타트업이나 재택 근무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에게서 N잡러를 찾아볼 수도 있다. 안정된 한 직장에서 나인 투 식스로 그 회사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쪼개고 분배해 여러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N잡을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생계를 위해, 어떤 사람은 미래를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워커홀릭의 성향 탓에. 4차 산업혁명이니 로봇의 발달이니, 앞으로의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은 점점 더 많아져 갈 테고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단다. 그 와중에 청년층에선 N잡러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쩌면 일의 개념과 형태는 점점 달라지지 않을까.

생존을 위한 절박함 때문에…

왜 나는 N잡러가 됐나. 정확히 내가 하는 일의 개수는 매일 다니는 회사와 비정기적 업무를 포함해 4.5개 정도 된다. 언제부터 나는 N잡을 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N잡러의 운명은 25살 때부터 시작됐다. 24살,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힘든 한 해를 보내고 한 달 동안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오랜 시간의 여행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그 덕에 나는 무기력함을 떨쳐낼 수 있었다. 25살의 봄부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다. 반드시 수입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과거의 나에게 가지고 있던 부채감을 해소하기라도 하는 듯.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강박은 쉴 틈 없이 나를 몰아쳤다. 24살의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감은 일종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주변의 친구들이 착착 준비해가는 취업 준비를 보며 켜켜이 쌓인 좌절감의 종착역이었다. 그 무기력함을 이겨내려고 아등바등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였으니,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을 때 그 불안감을 다시 느끼는 건 이상할 게 아니었다.

지금 4.5개의 일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처음 N잡러가 된 이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원대한 미래를 꿈꾸며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결국 나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감은 나를 여전히 N잡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정규직으로 취업한 친구들이 5년 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이 될 선배들을 보며 본인의 미래를 설계할 때, 나는 당장 1년 뒤 이 회사에 남아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이 산업에 이 업계에 이 직무에 계속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회사에서 나의 비전을 꿈꿀 수 없다. 결국 4.5잡러가 된 이유는 ‘커리어’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내 고용 형태로는 경력 증명서를 뗄 수도 없으며, 최악의 경우 나의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회사에선 내 경력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보게 될 수도 있단다. 뭐가 내 커리어로 먹힐지 모르니 커리어가 될 만한 것들은 일단은 다 해봐야지. 게다가 비정규직의 수입은 매달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삶을 견디기 버겁게 만든다. 저축도 하고 소비를 하기 위해 N잡의 수익은 작게나마 나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4.5잡은 미래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다.

물론 생존의 절박함 외에 희망찬 이유도 있다. 나는 아직도 한 직장에서 평생 비슷비슷한 직무를 하며 사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세상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재미난 일도 많다. 어른들에겐 정언 명령 같았던 평생 직장과 한 가지 직업의 의미는 이제 점점 옅어지고 있다. 충분히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이 있다면, 충분히 자신의 적성에 더 맞는 직장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일만 경험하고서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N잡러가 된 희망찬 이유엔 다양한 일에 대한 욕망과 순수한 호기심이 있다. 어떤 일이 과연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고 내 적성에 맞을지 찾아봐야지. 한 가지 일만 평생 하기엔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다.

N잡러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의 삶과 일의 사이클을 잘 파악해 N잡의 장단점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먼저 N잡의 최고 장점은 당연히 수입이다. 수입이 늘어난다. 무조건 수입은 다다익선이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N잡을 하면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수입은 올라간다. 나는 다달이 기본으로 무조건 들어오는 회사 월급과 정기적인 다른 N잡의 수입으로 저축을 하고 월세를 다달이 낸다. 저축과 월세가 빠지고 남은 얼마 안 되는 생활비를 고정하고 대신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다른 N잡의 소소한 수입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 소비하거나 주로 여행을 떠난다. 혹은 최소한의 생활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운동을 하거나 평소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울 수 있다. N잡은 일을 하는 만큼 삶의 질을 높여준다.

N잡러의 또다른 장점은 바쁘게 살 수 있다는 것. 쉽게 게을러지는 사람들에겐 N잡이 인생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뭔가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괜히 보람차고 뿌듯하고 내가 굉장히 쓸모 넘치는 인간이 된 것 같다. 난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할 수 있어! N잡은 삶의 충만함을 N배로 높여준다. 내가 굉장히 쓸모 있는 인간처럼 느껴지는데 거기다 수입까지 생긴다니. 게다가 N잡이 내가 정말 좋아해서 벌인 일이라면 그 행복감은 N배가 된다.

단점 역시 뚜렷하다. 우선 체력이 좋지 않으면 방전되기 쉽다. 실은 체력이 좋아도 쉽게 방전될 수 있다. 사람은 한 가지 일만 해도 업무의 강도가 강하다면 지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N잡러들은 ‘번아웃’을 조심해야 한다. 사실 지금 번아웃 되기 직전이다. 80% 정도 온 것 같다. N잡의 최대 단점은 워라밸이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라는 점이다. 업무라는 게 모두 그렇듯, 처음 내가 생각했던 강도와 다를 수 있고 내가 생각했던 소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릴 수 있다. 이렇게 됐을 때 N잡끼리 뒤엉키게 된다. 나름대로 나의 워라밸을 고려해 짜놓았던 스케줄은 엉망이 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일을 처리하다 번아웃 직전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N잡러는 포기해야 될 것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업무의 양은 어떻게 늘어날지 모른다. 퇴근 뒤 친구들과 약속을 쉽게 잡지 못하거나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운동을 하는 시간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 가장 최악은 재충전의 시간, 즉 나만의 휴식 시간마저 뺏기는 상황이다. N잡러가 되면 주 40시간의 노동 시간은 가뿐하게 뛰어넘는 경우도 많다. 대단한 휴식이 아니어도 일에서 손을 떼고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이야기다.

얼른 9월이 지나가길

이 외에도 N잡러가 되는 이유는 다양할 테고 N잡러의 장단점도 더 다양할 거다. 어쨌거나 나는 9월이 얼른 지나가길 바란다. N잡의 단점이 얼마 전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일상의 변수들이 생기면서 나는 요 며칠 잠을 설쳐야만 했다. 한바탕 9월의 버거움이 지나고 나면, 당분간 N잡러의 삶을 잠깐 유예하고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N잡러를 하며 놓쳤던 주변도 챙기고 내 건강도 챙기고 망가진 워라밸도 재정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휴식 뒤에 올 또다른 N잡에서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업무를 해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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