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태양아래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이 세금 수십억원을 내지 않은 조세범을 석연찮은 근거를 들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기소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부업자 민아무개(54)씨는 2007년 6억 8900만원, 2008년 1억 5500만원, 2009년 7억 4100만원, 2010년 8억 7200만원 등 종합소득세 24억여원을 신고·납부하지 않은 혐의로 2012년 4월 국세청에 의해 고발됐다. 당시 그는 2009년 5월 도피성으로 해외 출국한 뒤 위조 여권으로 재출국하는 등의 수법으로 해외 체류 중이었다.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검찰은 그를 지명수배했다.
지난해 3월 민씨가 국내로 밀입국하다 적발되면서 본격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결과 그는 2년2개월(2009년 5월~2011년 7월)간 본인 여권으로 해외에 머물렀고, 4년4개월(2011년 10월하순~2016년 3월)간 밀항해 해외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검은 그를 지난해 4월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본건 범죄에 해당하는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공소시효가 2016년 7월로 끝났다는 이유였다. 이 조세포탈 수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가 별도로 담당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애초 두번째 해외체류(4년4개월)를 해외도피로 봤다. 그러면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가 정지돼 시효만료가 2020년 11월께라고 보고, 추가 수사해서 기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기소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재판부가 ‘민씨의 출입국관리법 위반 행위가 해외도피 목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바람에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우리도 손 쓸 수 없게 된 것”이라며 “불기소 처분에 대해 항고가 들어왔지만 서울고검이 지난 4월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 체류 기간에 공소시효를 중지하려면 그 목적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국세청 고발이 2012년 4월이라 2011년 밀출국 때는 본인 범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피의자의 다른 재판에서 나온 법원 판단을 근거로 공소시효를 판단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8월 부산지법은 민씨의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 그의 ‘밀항의도’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인정 여부에 밀항의도는 중요치 않다’, ‘해외도피 목적으로 밀항했다고 증명되지 않았다. 형량 정하는 데 참조하겠다’ 등의 언급을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공소시효는 검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조세포탈 혐의의 공소시효를 정면으로 다룬 재판도 아닌데, 다른 사건 재판에서 판사가 양형 사유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공소시효 끝’이라고 판단한 건 이례적”이라며 “통상 ‘해외도피 목적 출국’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보강 수사를 하는 데 전혀 없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다른 사건에서 ‘해외도피 목적의 밀항은 아니다’라고 한 판단과 공소시효 정지 여부를 따질 때 ‘도피목적 해외체류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며 “‘조세범죄를 저지른 뒤 밀항해 해외체류했고, 그때문에 조사를 못했다’는 것만 인정돼도 99% 공소시효 정지가 인정된다. 소추 사유에 불과한 국세청의 고발이 없었다는 이유로 본인 범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검찰이 무능했거나 봐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변호사는 “검찰 해명이 맞다면, 국가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조세범을 어렵게 잡고도 공소시효 계산을 잘못해서 그냥 풀어준 셈인데, 담당 검사 등 누구도 책임을 안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민씨는 자기 여권으로 해외에 머물렀던 ‘2년2개월’(2009년 5월∼2011년 7월)은 ‘해외도피’로, 밀항은 ‘해외도피가 아닌 것’으로 정리됐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자기 여권으로 나갔던 것과 남의 여권으로 몰래 나갔던 것 중 어느 것이 죄질이 더 나쁘겠는가”며 “앞에 체류 기간 동안만 공소시효를 중지한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판단을 존중했다는 검찰 설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검찰이 민씨의 공소시효를 5년으로 계산한 것도 논란거리다. 민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가법에는 포탈세액이 5억에서 10억원 사이인 조세범을 3년 이상 징역형으로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이 경우 공소시효는 10년으로 연장된다. 이에 대해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소득의 귀속 주체가 민씨가 아니라 법인으로 판단돼 종합소득세율 38% 대신 법인세율 25%를 적용했다”며 “이렇게 하면 한해 최대 포탈세액이 5억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국세청이 특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는데, 경찰 조사를 근거로 적용 법률을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조세포탈 불기소처분이 잘못됐다’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수사 재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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