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12-12 공씨책방 앞 인도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대표적인 헌책방도 젠트리피케이션 광풍에 밀려 25년 신촌살이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45년 헌책방이 건물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쫓겨날 처지가 됐다.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황보승혁 판사는 21일 건물주 전아무개씨가 서울 서대문구 ‘공씨책방’ 장화민(61) 대표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소송에서 “건물주에게 건물을 인도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전씨는 지난해 8월26일 공씨책방에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을 통지하고 건물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건물주의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이 계약 만료일로부터 불과 1개월 전이었다. 중고서적 판매업 특성상 점포 이전에 기간이 필요하다. 이번 통지는 무효”라며 맞섰다.
황보 판사는 “현행 임대차보호법을 보면 통지는 계약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할 수 있게 돼 있다. 피고(공씨책방)가 원고(건물주)에게 건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공씨책방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현재 위치에 보존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공씨책방의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는 특정 장소·건물과 결부된 것이라기보다 책방이 보유한 방대한 중고서적, 운영자의 해박한 지식, 이를 기초로 누적된 단골 등 인적 네트워크로 이뤄진 복합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울시가 ‘이전하더라도 공씨책방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씨책방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사정은 있지만, 현행법을 따라야 하는 법원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1세대 헌책방’으로 꼽히는 공씨책방은 1972년 고 공진석씨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문을 열었다가 1985년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1995년 지금의 신촌 건물로 옮겨왔고,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공씨책방의 기존 임대료는 월 130만원이었으나 지난해 건물주가 ‘월세 300만원을 맞춰줄 수 없으면 나가라’고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씨책방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사례로 주목받아왔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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