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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도 사람도 무력했다…고래고기 21톤이 사라졌다

등록 2017-09-23 09:09수정 2017-09-24 09:35

[토요판] 뉴스분석 왜?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원들이 지난 9월14일 낮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래고기 유통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원들이 지난 9월14일 낮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래고기 유통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불법 유통이 의심되는 고래고기 27톤을 경찰이 압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27톤 중 21톤을 무혐의로 결론짓고 이를 피의자에게 돌려줬다. 21톤의 값어치는 30억원에 달했다. 시민단체가 검찰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래고기를 돌려준 과정이 의심쩍으니 밝혀달라는 뜻.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경찰은 검찰의 잘못을 밝혀낼 수 있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울산경찰이 유통업자에게 압수한
고래고기 21t을 검찰이 돌려줘
동물보호단체는 경찰에 검찰 고발
“돌려준 배경 무엇인지 밝혀져야”

검 “DNA 결과만으론 기소 못해
피의자가 부인하면 처벌 불가능”
‘혼획’ 고래 유통 허용하는 현실이
법의 허점 낳고, 포획 부추기는 셈

“고래는 울산의 역사며 미래다.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58점의 선사시대 고래그림으로 울산은 세계 최초의 고래도시란 역사성을 가졌다. 2008년 8월1일 울산광역시 남구에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지정됨으로써… 고래의 날은 지속가능한 모든 노력으로 울산 바다에 다시 고래가 살아 숨쉬는 생태적인 미래를 만들겠다는 우리 남구의 아름다운 약속이다….”(‘고래의 날’ 선언문 2009년 4월25일)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엔 옛 고래잡이 전진기지인 장생포에서 성행했던 포경 관련 유물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바로 옆 고래생태체험관 수족관엔 일본에서 수입한 돌고래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고래의 날 선언문이 새겨진 고래 조형물이 이 생태체험관 앞에 있다.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 사이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가 있다. 고래의 생태를 조사하고 보호대책을 연구하고 구조와 치료도 한다.

이 건물들 건너편엔 도로를 따라 수많은 고래고기식당들이 영업중이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박물관과 수족관, 연구센터와 식당이 공존한다.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으로 1986년부터 상업포경이 금지돼 고래를 잡는 건 불법이지만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고 친 그물에 걸려 죽거나(혼획) 해안에 떠밀려 오거나(좌초)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발견된(표류) 고래는 해경의 유통증명서를 받은 뒤 사고팔 수 있다. 그 고래고기들이 울산과 경북 포항, 부산과 서울의 식당으로 팔려나간다. 고래를 잡는 건 불법이고 먹는 건 합법인 현실이 이런 풍경을 낳았다.

21톤 고래고기를 돌려준 검찰

지난해 4월 초, 울산중부경찰서가 북구의 한 냉동창고를 덮쳤다. 피의자들은 불법으로 잡은 밍크고래를 전북 군산에서 싣고 와 해체하고 있었다. 6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창고엔 많은 고래고기가 냉동 상태로 보관돼 있었다. 그 양이 27톤에 달했다. 장생포 식당에서 파는 고래고기는 1㎏에 12만원 안팎. 소비자가로 치면 30억~40억원에 이르는 유례가 없이 많은 양이었다.

경찰은 27톤 고래고기 역시 불법 포획된 것으로 보고 압수한 뒤 샘플 47점을 채취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보냈다. 2011년부터 시행중인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에 따라 유통이 승인된 고래의 디엔에이(DNA) 시료는 고래연구센터에 보관된다. 샘플 채취된 고래고기들이 고래연구센터에 보관 중인 시료 리스트에 해당된다면 유통 가능한 고래임이 입증된다.

피의자들은 해체 작업 중이던 밍크고래가 불법 포획된 고래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27톤에 대해선 부인했다. 합법적으로 유통 승인된 고래라며 유통증명서도 제시했다. 이 유통증명서의 진위 여부 역시 고래연구센터의 대조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8명을 구속했고(불구속 18명) 식품위생법 위반, 수산자원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문제는 고래연구센터의 디엔에이 대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디엔에이를 분석하는 장비가 울산 고래연구센터엔 없었다. 고래연구센터 역시 부산의 국립수산과학원 본원으로 샘플을 보내야 했고 본원에서 대기 중인 의뢰건은 많았다. 27톤 전체의 불법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울산지검은 4월말 피의자들이 인정한 6톤 분량만 불법 포획된 고래고기로 보고 기소했다. 피의자들의 변호인은 나머지 21톤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무혐의로 판단한 검찰로선 돌려주지 않을 근거가 없었다. 5월 초 수협위판장 냉동창고에 보관돼 있던 고래고기 21톤은 피의자들 손에 넘어갔다. 압수물을 돌려줄지를 결정할 권한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찰은 고래고기가 피의자들 손에 넘어갔다는 얘기도 변호사 사무실 직원에게 들어야 했다.

피의자들에겐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고래연구센터의 디엔에이 분석 결과, 47개 샘플에선 고래연구센터가 보유한 밍크고래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는 개체가 나오지 않았다. ‘불법 유통된 밍크고래로 추정된다’는 뜻이었다. 분석 결과는 8개월 정도 지난 지난해 12월 말에야 나왔다.

“DNA 결과만으론 기소 못해”

압수된 밍크고래가 디엔에이 분석 결과도 나오기 전에 피의자들에게 넘겨졌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디엔에이 검사를 기다려보자’며 재검토 요청까지 했다고 <부산일보>가 보도했다. ‘검찰이 부실했거나 부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지난 9월13일 당시 고래고기 환부 결정을 한 검사를 직권남용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울산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핫핑크돌핀스는 고발장에서 “고래고기는 고래연구센터의 디엔에이 분석 결과가 나와야 불법 여부를 알 수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고래고기의 70% 정도가 불법으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울산지검의 환부 지휘는 명백한 실수이며 이런 실수를 저지른 배경이 무엇인지도 가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래연구센터의 디엔에이 분석 결과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은 경찰이나 동물보호단체와는 큰 차이가 있다. ’디엔에이 결과를 보고 불법 여부를 판단하자’는 경찰과 달리, 검찰은 디엔에이 분석 결과가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본다. 울산지검 관계자는 “고래연구센터의 디엔에이 불일치 결과가 ‘이 고래고기가 불법 포획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진 못한다. 고래연구센터가 유통 승인된 모든 고래의 디엔에이를 확보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엔에이 분석 결과 고래연구센터에 보관중인 리스트와 일치하는 샘플이 나온다면 ‘합법’을 인정받을 순 있지만, 일치하는 샘플이 없다는 사실이 불법 포획의 증거가 될 순 없다는 말이다. 결국 참고자료나 결백을 입증할 증거가 될지언정 형사 처벌의 증거로 삼기엔 부족하다는 뜻. 그러니 검찰로선 디엔에이 분석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는 결론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범죄 의심만으로 기소를 할 순 없다. 혐의를 증명할 물증이 필요한데 경찰 수사엔 그 물증이 부족했다. 그래서 (21톤 분량은) 무혐의 처분했고 압수물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래연구센터가 유통 중인 모든 고래의 디엔에이를 확보하고 있지 않다”는 검찰의 말은 맞다. 고래연구센터가 혼획된 고래의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최근 자료도 100%에 가깝지만 완벽하진 않다. 일부 불법 유통업자들은 이런 허점을 파고든다. 수년 전 발급받은 유통증명서를 들이밀며 ‘고래연구센터에 디엔에이 자료가 없겠지만 승인된 고래고기가 맞다’고 주장한다. 울산중부경찰서에 체포된 피의자들도 10년도 더 지난 유통증명서를 합법의 증거로 제시했다.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는 검찰의 주장에 동물보호단체 등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의심’을 품을 만한 정황들은 많다. 피의자들이 21톤 고래고기를 돌려받은 시점(2016년 5월3일)은 5월 고래축제(26~29일)를 앞둔 때였다. 평소보다 고래고기 수요가 증가하는 축제 기간을 앞두고 있던 피의자들로선 하루빨리 고래고기를 돌려받아 식당에 내다팔아야 할 유인이 충분했다. 피의자 중엔 장생포에서 고래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이도 있었다. 피의자들이 선임한 변호인 중 ㅎ변호사는 2011년 2월부터 2년 동안 울산지검에서 근무하면서 환경 해양 사건을 전담했다. 27톤을 압수한 울산중부경찰서 수사팀을 지휘한 부서다.

또한 경찰이 피의자들을 체포할 당시 불법 포획된 밍크고래를 해체하는 중이었고, 2016년 울산에서 유통 승인을 받은 밍크고래가 한마리도 없었다는 점, 피의자들이 동종 전과가 있었던 점 등은 불법 포획된 밍크고래로 의심하기에 충분한 사정이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피의자들의 범죄 전력, 조직화 정도와 규모 등을 고려하면 불법 포획으로 볼 여지가 많았다. 돌려주는 과정에서 평소와 달리 경찰 입회도 배제하는 등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상식과 관행을 무시한 불법 포획 고래고기 처리 방식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고발장)을 하고 있다.

경찰의 수사 부족을 탓할 게 아니라 보강수사를 지시하는 등 의지를 보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법 절차는 어기지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수사 의지는 부족했다”고 비판한다.

고발장을 접수한 울산경찰청은 광역수사대에 전담팀을 꾸리고 수사에 들어갔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은 “고래고기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나 요구가 없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아울러 고래고기 불법 유통 전반에 대해 들여다보고 개선 방향까지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혼획이 모두 혼획일까

경찰이 검찰을 수사하게 된 탓에 검·경 수사권 갈등으로 불거졌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모순적인 현실에서 오는 허술한 체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포경은 금지했지만 혼획·좌초·표류된 고래의 유통을 허가하면서 수많은 ‘틈새’가 생겨났다.

해경은 외관상 작살 등에 찔린 상처가 없으면 혼획으로 보고 유통증명서를 발급한다. 고래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 사실상 포획을 했더라도 유통증명서만 ‘따내면’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어부들이 ‘바다의 로또’로 불리는 고래 혼획(또는 혼획을 가장한 포획)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고래연구센터가 집계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혼획된 고래는 모두 1만1816마리였다. 연평균 1969마리, 하루에 5.4마리가 혼획되고 있다. 반면 그물에 걸린 살아 있는 고래를 놓아줬거나 발견했다는 신고는 1년에 한두건에 불과하다.

불법으로 포획한 고래고기를 냉동해버릴 경우, 이후 적발되더라도 합법이라고 잡아떼면 이를 형사 처벌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검찰이 밝혔듯이 ‘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곧바로 ‘불법의 증거’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냉장 상태의 고래고기는 부패 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냉장 고래고기를 적발했는데 유통증명서가 없고 신선한 상태라면 불법 포획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반면 냉동된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합법, 불법이 섞여버리면 처벌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포획 업자들과 변호사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그린피스는 2012년 ‘사라지는 고래: 한국의 불편한 진실’ 보고서를 통해 높은 혼획 건수와 불법 포경이라는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한국의 제도는 어망에 잡힌 죽은 고래를 횡재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포경을 혼획으로 가장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며 “죽은 고래를 발견한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지 말고 살아 있는 고래를 구조시킨 경우 보상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물론 제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사이 합법적으로 유통된 밍크고래는 2012년 79마리, 2013년 57마리, 2014년 54마리, 2015년 97마리 등 한해 평균 80마리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밍크고래의 연간 소비량은 그보다 두배 이상 많은 240마리로 추정된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는 “고래 관리 고시 등 법체계엔 맹점이 너무 많다. 포획은 금지하면서 유통은 허용하는 모순된 현실에서 수사기관마저 불법 업자들을 처벌할 의지가 없다. 한국은 말뿐인 포경금지국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울산/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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