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단념도 1년새 36%↑ “장기실업 증가 신호”
박아무개(49)씨는 소규모 전자부품 업체를 운영하다 지난해 9월 거래하던 업체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사업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인맥이 넓은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취직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나 평소 아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나자 막노동 자리라도 알아보려고 했으나 그도 여의치 않았다. 나이 먹은 사람을 선뜻 받아주려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 회복이 지연되면서 박씨 같은 1년 이상 장기실업자와 구직단념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20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과거 취업경험이 있고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은 ‘전직 실업자’ 수는 올 10월 19만명에 이르러 1999년 12월(20만1천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12만6천명)에 비해 51% 늘었다. 연령별로는 40대와 50대의 증가율이 높다. 이들은 감원이나 명예퇴직 이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년 이상 전직 실업자는 주부가 육아 등을 이유로 장기간 쉬었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경우도 포함되기 때문에 꼭 장기실업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장기실업자를 정확히 측정하는 지표는 없다”면서도 “전직 실업자가 늘고 있다는 지표를 장기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로 해석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원하지만 일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구직단념자’ 수도 올 들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구직단념자는 올 3분기에 13만7천명으로 2001년 1분기(14만5천명)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10월에는 1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나 늘어났다. 사유별로 보면, 근로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으며, 40% 가량은 몇달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으나 구하지 못해 이번에는 아예 시도해보지도 않았다고 응답했다.
경기 시흥의 실업자종합지원센터 남경희 부장은 “실직한 뒤 6개월까지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는데 찾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하지만 그런 일자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런 상태가 1년 이상 계속되면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는데 이때는 이미 때를 놓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회사 쪽에서는 오랫동안 쉰 사람들은 현장 적응력이 떨어진다며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구직단념자의 경우 기대수준은 높지만 만족스런 일자리가 제한돼 있고 경쟁은 치열해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번 실업에 빠지면 재취업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을 통해 장기실업을 줄이는 노력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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