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구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방화기도범을 격투 끝에 붙잡은 고교생 김형석(18), 최고영(18), 주세별(18·왼쪽부터)군. 대구/연합뉴스
지하철서 “불이야” 비명에 먼저 몸날려 방화미수범과 격투끝 대형참사 막아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멋있다는 말을 많이 해 흐뭇했어요.” 졸업을 앞둔 고교생 3명이 대구지하철 전동차에 불을 지르려던 30대 남자를 격투 끝에 붙잡아 화제다. 학교 단짝인 김형석(18·영남공고 화공과 3), 최고영(18·〃), 주세별(18·〃)군은 19일 대구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 열차가 대구시 중구 삼덕동 경대병원역을 진입하는 순간 “불이야”라는 고함을 들었다. 동시에 옆칸 출입문 유리창으로 불길이 치??는 모습이 목격됐다.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며 불길을 피해 이들이 탄 칸으로 몰려들어왔다. 세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들을 비집고 옆칸으로 뛰어들었고, 스프레이 살충제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있는 방화범 김아무개(34·무직)씨를 발견했다. 김군이 잽싸게 몸을 날려 김씨를 붙잡았고, 이어 최군과 주군이 달려들어 김씨의 팔을 비틀었다. 김씨는 막무가내로 저항을 했지만 고함을 듣고 달려온 경산소방서 소속 박수덕(49)씨와 함께 김씨를 열차가 도착한 경대병원역 구내로 끌어냈다. 김군 등은 이날 시내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이들은 전동차 맨 마지막 칸에 올라 영화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때 추운 날씨임에도 코르덴 바지와 티셔츠만 입은 남자가 지하철을 타더니 열차 안에 보관 중인 소화기를 옆칸으로 가져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김군은 “‘혹시 사고를 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는데 옆칸에서 ‘불이야’ 하는 고함이 들렸다”며 “방화범을 막지 못하면 우리도 살 수 없고, 다른 시민들도 피해를 입겠다는 생각에 몸을 날렸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최군은 이미 경북 구미의 휴대폰 케이스를 만드는 업체에 취직했으며, 김군은 호텔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대구중부경찰서는 20일 현존 전차 방화 미수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2001년부터 피해망상과 정신분열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10월 이후에도 서울의 한 병원에서 5차례에 걸쳐 정신과 등의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김씨가 2~3년 전부터 실직 상태였고, 올 초에는 이혼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김씨가 불을 붙였던 바퀴벌레 잡이 스프레이 살충제에 실제로 불을 붙여 실험해 본 결과, 불길이 1m까지 뻗어나갔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21일 고교생 3명과 소방관 박씨에게 범인 검거 상금과 상패를 주기로 했다.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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