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의 딸 서연양이 10년 전 이미 숨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서연양 사망에 관한 의혹 규명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 법조인들은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20여년간 진행돼 온 김광석 가족 간 저작권 분쟁에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김광석 타살 의혹’ 등 각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었던 동력이었고, 이번 서연양 유기치사 의혹 사건의 범행 동기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김광석 노래들에 대한 금전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1996년 김광석 사망 직후 시작된 부인 서해순과 김광석 친가 쪽 저작권 쟁탈전의 일부를 관련 판결문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1996년 4월, 1차 소송
김광석은 1993년 킹레코드와 음반 4개(3집, 4집, 다시부르기 1,2)를 제작하면서 아버지 김수영을 계약자로 했다. 음반들은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96년 1월 김광석이 숨지자 음반사는 계약자인 아버지에게 수익금을 보냈다. 같은 해 4월 부인 서해순은 시아버지 김수영을 상대로 ‘음반 수익금을 나에게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광석의 상속권자는 서해순과 그의 딸이고, 부모나 형제 몫은 ‘0’이기 때문이다. 소송은 재판부가 화해를 권유해 합의로 종결됐다. 1996년 6월의 일이다.
①항: 음반 4개의 권리는 아버지 김수영에게 있다. 김수영이 사망하면 손녀딸 서연에게 권리를 양도한다.
②항: 서해순이 향후 제작하는 김광석 라이브 앨범의 권리는 서해순에게 있다.
③항: 향후 제작한 김광석 노래 관련 모든 음반은 양쪽이 합의한다.
이 합의서는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법률적으로 ㄱ이라는 사람의 상속권자는 부인과 자식이다. 자식이 한명이라고 하면, 자식과 부인이 ‘1:1.5’로 권리를 갖는다. ㄱ의 부모나 형제의 권리는 ‘0’이다. 이 사건의 경우 김광석이 생전에 김수영에게 증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상속권자가 ‘증여 받은 것을 달라’고 소송하면 2분의1을 인정한다. 따라서 기존 4개 음반의 권리에 대해 김수영과 서해순·김서연이 반반으로 나눈 것 같다. 합의 내용은 적절하게 잘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서울 지역 한 중견 변호사)
합의 불과 7일 뒤인 같은 해 7월, 아버지 김수영은 새로운 불씨를 남긴다. ‘음반 4개의 권리는 모두 이달지(김광석의 어머니)와 김광복(김광석의 형)에게 있다’는 유증(유언에 의한 증여)을 남긴 것이다. 1주일 전 합의 내용 중 ‘1항’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었다. 이 유증은 9년 뒤 2차 소송의 도화선이 된다.
■ 9년 뒤 2차 소송 시작되다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던 양쪽은 2004년 아버지 김수영이 폐렴으로 숨지면서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로 맞닥뜨리게된다. 김광석 어머니와 형은 ‘1996년 7월 김수영의 유증’을 근거로 김수영과 서해순의 ‘1996년 6월 합의’를 무효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1∼3심을 거치면서 한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먼저 이뤄진, 재판부 권유에 의한 합의가 뒤늦게 이뤄진 유증보다 효력이 세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서울지역 한 변호사는 “판결문만 보면 원고가 너무 무리한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심에서 일부 사안에 대해 김광석 어머니쪽이 승소하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사실상 피고 서해순의 완승이었다. 양쪽은 2008년 10월20일 파기환송심 도중 합의로 재판을 종결했다. 양쪽간 조정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완패 처지에 놓였던 김광석 어머니 등이 ‘그나마 일부라도 가져가는 방향’으로 조정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법원이 서해순 완승을 선언한 이후였기 때문에 조정을 ‘베풀어’ 줄 주체는 김광복이 아니라 서해순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17년 9월, 이것은 3차 저작권 소송
2008년 10월 원고 패소가 확정되고 또다시 9년이 흐른 지난 21일 김광복(김광석의 형)은 서해순을 검찰에 고발했다. 2차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2007년 12월23일 서연양이 숨졌는데, 이 사실을 서씨가 외부에 알리지 않아 소송사기죄를 지었다는 게 이유였다. 2007년 서연양을 유기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도 덧붙였다. 검찰은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냈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고발인 조사 등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광복 주장처럼 서해순의 소송사기 혐의가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서연양 생존 여부와 당시 재판의 결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서연양 사망으로 재판 절차가 다소 바뀔 순 있지만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 소송 사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서연양의 법정대리인인 서씨와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에 판결은 유효하다.”(장창준 변호사)
“김수영씨가 2004년에 사망했고 서연양은 그 이후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미 서연양에게 저작권이 귀속됐다고 볼 수 있다. 서연양 사망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고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보기 어렵다.”(정석원 변호사)
“뭐가 소송 사기라는지 이해가 안 된다. 소송사기는 허위로 꾸민 자료를 제출해야 성립하는데 서씨가 김서연의 법정대리인이다. 딸이 죽으면 서씨가 김서연의 유일의 상속권자로서 김서연 권리를 모두 갖는데, 사망 사실을 숨겨서 얻는 이득이 전혀 없다.”(서울지역 한 중견 변호사)
당시 재판의 핵심 쟁점은 ‘1996년 6월 합의’와 ‘1996년 7월 유증’ 중 무엇의 효력이 더 센가였다. 1,2,3심 모두 전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연양 생존 여부는 재판의 쟁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유기치사죄가 성립된다면 소송사기죄가 될 여지는 있다. 만약 서씨가 실제 딸을 유기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딸의 상속권자가 될 수 없다. 상속권자가 될 수 없는데도 이런 사실을 재판부에 알리지 않았다면 소송사기이기 때문이다.
“실체적 권리·의무에 반하는 허위 증거를 재판에서 주장해야 소송사기죄가 성립한다. 딸이 숨졌다해도, 서씨가 딸의 유일한 상속권자이기 때문에 ‘죽음을 재판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게 실체적 권리·의무에 반하는 허위가 될 수 없다. 소송사기죄는 성립 안된다. 다만, 유기치사를 실제로 저질렀다면, 서씨가 딸의 상속권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소송사기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지방법원 한 부장판사)
그렇다면 이제 핵심은 유기치사죄 성립 여부다. 가능성은 있을까. 높지 않다. 이미 2007년 12월 서연양 사망 직후 경찰은 부검 끝에 서연양 죽음에 대해 ‘범죄혐의 없음’으로 결론냈다. ‘자연사’라고 국가기관이 확정해줬다는 뜻이다. 경찰 고위 인사는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새로운 정황이나 증거가 있다기보다 국민적 관심이 많으니 혹시 다른 판단이 가능할지 과거 사실관계를 일단 들여다보고 있다”라며 “추가제보나 증언이 나온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기치사죄가 인정돼 소송사기죄가 성립되면, 최대 수혜자는 서연양의 유일한 생존 혈육, 김광복이다.
90억원을 둘러싼, ‘쩐의 전쟁’?
20년에 걸친 3차례 소송전 대상이 된 김광석 노래의 저작권 가치는 얼마일까. 정확한 계산은 쉽지 않다. 김영기 인하대 지식재산전담 교수는 “원래 저작권 평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저작권은 사후 70년간 보호되는데 앞으로도 50년 정도 남았다. 음원 다운로드 수입, 영화 등에서 음악이 사용될 때의 수입, 음반 판매 수입 등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미래 수익을 예측할 수 있다. 서씨가 한 인터뷰에서 ‘석 달에 한번 음원저작권이 정산되는데 1600만원을 왜 안 줬느냐’고 한 대목이 있다. 조심스럽지만 그것을 기초로 계산해보면 9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김양진 이지혜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