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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외국인 주민 170만 시대, 한국사회 향한 ‘비방용 회담’

등록 2017-09-30 10:30수정 2020-10-05 15:10

[토요판] 특집
지난 9월16일 방글라데시 출신 모이누딘 아메드(맨 왼쪽)를 비롯한 외국인 이주민들이 ‘제6회 서울이주민예술제’ 행사 중 하나인 ‘이주민 솔직 토크 그만 물어봐!’에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제공

2009년 인도 출신 보노짓 후세인 당시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시내버스 안에서 자신을 향해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라고 한 30대 남자를 수사기관에 고소한다. 모욕죄 혐의로 약식기소된 이 남자에 대해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모욕 행위로 처벌한 최초의 사례다. 1심 선고 뒤 후세인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적 문화를 공론화하고 싶었다. 한국인들이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이주민은 더 늘었고 다양해졌다.

소바트

“일하러 온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게으르고 노력 안해 가난하단 말도”

모이누딘

“10여년 동안 서울 살아도 늘 외국인

뉴요커같이 ‘서울인’ 호칭은 어때?”

히로코

“선진국에서 온 덕에 사정이 나은 편

나 역시 동남아인에 대한 편견 있었다”

자피라

“돼지고기·술 못 먹는 이슬람 신자들

음주 강권하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최근 그룹 ‘지오디’(god) 멤버 박준형은 제이티비시(JTBC) 예능 프로그램 <사서고생> 촬영을 위해 벨기에 여행을 갔다 봉변을 당했다. 브뤼셀 거리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그를 에워싼 채 신체 일부를 건드리고,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말을 퍼부었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인종차별 오랜만에 느꼈다. 1970년대~80년대 초반 미국 수준의 인종차별을 느껴봤다”고 말했다. 여행정보 공유 커뮤니티에선 국외여행을 갔다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한국인들의 경험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식당 종업원이 일부러 주문을 받지 않았다든가, 아무런 이유 없이 행인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든가.

외국인 주민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한국 상황은 어떨까?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현실을 조사한 무투마 루티어 유엔(UN)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의 결론은 이랬다. “당국이 관심을 둬야 할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와 사는 사람들을 모두 뭉뚱그려 ‘이주민’이라 불러도, 출신 국가·학력·종교·성별 등에 따라 한국에서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유색인종인 한국인이 또 다른 유색인종 아시아인,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국가에서 온 이들을 차별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시아 국가 출신 이주민들의 경험담이 궁금했다. 한국 사람들의 의사 표현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 능력을 지닌 아시아인 4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길게는 20년, 짧게는 5년간 한국에서 살고 있다.

심각한 인종차별, 분명히 존재한다

1997년 한국인과 결혼한 뒤 강원도 횡성에 정착한 모우에 히로코(50)는 2008년부터 이주민과 여성을 주제로 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9월21일 히로코와 함께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가나안농군학교를 찾았다. 이곳에선 인도네시아 출신 자피라 위라완(29)과 캄보디아 출신 하이 소바트(33)가 농업기술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국인들의 의사소통을 돕고 있었다. 자피라는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통번역 일을 하며 명확한 진로를 고민 중인 ‘취준생’이라고 했다. 소바트는 6년 전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사회복지학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그는 직장 문제로 지난 27일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이날 저녁 서울 광진구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모이누딘 아메드를 만났다. 30대 초반인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남북문제를 깊게 공부해보기로 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해 동아시아와 유럽 정치의 차이와 유사점을 공부하고 있다. 일본·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 앞에 성(family name)을 표기한다.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 가운데 80% 이상은 이슬람 신자다. 모이누딘과 자피라도 이슬람을 믿는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자피라 위라완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현정 기자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자피라 위라완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현정 기자

■ 질문 1: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지금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다른가?

히로코 “결혼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강원도 횡성 시댁에서 살게 됐다. 일본에선 은행에서 일했는데 한국에 오니 5살짜리 조카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요리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자존심이 무너졌다. 겉모습은 한국 사람 같은데 ‘예, 예’만 할 줄 아니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그때 아무런 편견과 조건 없이 나를 반겨준 건 집에 있던 강아지뿐이었다. 남편도 일하러 일찍 나가고, 집에선 말이 안 통하니 너무 외로웠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일본인 친구가 있는 서울 어학당까지 갔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러다 횡성군 여성회관에 갔다. 외국인은 나 하나니까 신기해했다. 거기서 컴퓨터나 요가도 배우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횡성에만 결혼이주여성이 300명이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러한 지원센터에선 이주여성들만 끼리끼리 만나게 된다.”

소바트 “2011년 처음 한국 왔을 때 밖에 나가기 힘들어 2~3주 동안 학교 기숙사에만 있었다. 1~2년 뒤부터 지원센터가 생기기 시작하더라. 이주민 도와주는 교회도 많아졌다. 한국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출산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교회 도움을 받았다.”

자피라 “그동안 한국 사회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땐, 외국인 콜센터에 인도네시아말을 하는 상담사가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웹사이트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되고 한국어만 있어서 물건도 못 샀는데 많이 바뀌었다.”

9월21일 강원도 원주시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강원도 횡성 주민인 모우에 히로코(왼쪽부터 시계 방향)와 경기도 일산에 거주 중인 하이 소바트
9월21일 강원도 원주시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강원도 횡성 주민인 모우에 히로코(왼쪽부터 시계 방향)와 경기도 일산에 거주 중인 하이 소바트

■ 질문 2: 유독 한국에서 많이 듣는 말이나 질문이 궁금하다.

자피라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다른 나라란 사실을 잘 모르더라. 인도네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카레가 많겠네’라고. ‘그건 인도예요’ 알려준다. 발리섬이 인도네시아라는 사실도 잘 모른다. 뭐 그 정도는 괜찮다.”

소바트 “우리에겐 앙코르와트가 있는데 ‘거긴 타이 아니야?’라는 말 들을 땐 마음이 좀 안 좋다. 베트남이나 타이와 헷갈리나 보다. 캄보디아에도 언어가 따로 있냐는 질문도 한다.”

히로코 “아무래도 역사 문제가 있으니 ‘김연아냐 아사다 마오냐? 한국 대 일본 축구경기 하면 어디 응원하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일본 응원한다’고 답한다. 사실 나는 누가 이기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묻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답, 의도가 보이니까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

모이누딘 “방글라데시아를 아주 못사는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지금은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를 모르는 건 한국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네이버에 방글라데시를 검색하면 옛날 정보만 있다. 좋은 소식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좋지 않은 사건만 보도된다. 큰 홍수가 났다거나, 교통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었다거나. 방글라데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라민은행이 있는데 이러한 시스템에 어떻게 전 세계까지 퍼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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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피부 더럽다 생각하는 것 같다”

■ 질문 3: 출신국이나 피부색, 종교 등으로 인해 차별을 당하거나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 다른 이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전해주면 좋겠다.

소바트 “우리 교회에 다니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한국에 왔다. 한국말이 서툴러도 함께 일하면서 ‘나쁜 말’ 듣는다는 거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무섭다고. ‘너희는 느리고 게으르고 노력 안 하니까 가난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위로밖에 해줄 게 없다. 친구들은 서로 월급을 얼마 받는지 아는데, 똑같은 일을 해도 한국말을 잘하면 돈을 더 준다. 말을 못하면 덜 주고. 나는 피부가 하얀 편이라 괜찮은데 조금 더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친구들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식당에서 함께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캄보디아인들은 사람을 정면으로 보고 웃음을 보여주는데, 여기선 눈치를 보다 보니 똑바로 보질 못한다.”

자피라 “동남아 사람이니, 살짝살짝 인종차별 당했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서양인에 대해선 ‘우와~’ 동경하는 게 있으니까. 내가 실수했을 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지~’라고 하는데, 나 한명으로 집단을 판단하는 건 좀 그렇다. ‘예전에 봤던 인도네시아 사람은 더러웠는데 다 그런 건 아니네요’란 말도 들었다. 누가 종교를 물어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이슬람’이라고 말하긴 조금 어렵다. 주말엔 히잡을 쓰고 사원에 가는데, 지하철 맨 마지만 칸에 탄다. 아니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젠 할 만하다. 이슬람에 대해선 테러와 연관된 이미지가 많다. 종교가 테러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종교를 내세운 사람들이 하는 거지만, 그런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다. 우리는 돼지고기와 술을 먹을 수 없다. ‘돼지고기와 술을 못 먹는데 왜 한국에 왔냐?’는 말 많이 들었다. 아직까진 다행히 강제로 먹은 적은 없는데. 직장 다니는 이란 친구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 상사한테 ‘종교 때문에 술 못 먹는다’ 그러면 ‘아무도 안 봐. 그냥 먹어. 여긴 한국이니 한국 문화로 해야지’ 이렇게 나오니까. 우리가 마이너리티(소수자)니 어쩔 수 없지만, 제발 한번 못 먹는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모이누딘 “학업 중이라 차별 문제는 많이 없었다. 그런데 같은 학교를 졸업해도 남아시아 사람들에 비해 서양에서 온 사람들이 좋은 대우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꼭 차별이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서양 어느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 연락처도 서로 교환하고, 친해지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인다.”

히로코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나는 선진국에서 온 사람이니 사정이 좀 나은 거 같다. 필리핀 친구 중에 영어 선생님이 있는데 발음 때문에 원어민 교사 취업이 안 됐다고 하더라. 그 문제로 친구가 화를 많이 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 뭐 그러다 말았지.”

소바트 “자녀를 학원에 보낸 부모들이 선생님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따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이건 영어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자피라 “내 친구는 영어교재 커리큘럼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겨 사람을 잘라야 하면 일단 동남아 사람들부터 자른다고 하더라. 일에 대한 결과물로 평가해야지 출신 나라를 따져서 그러는 건 좀.”

사람 있는데도 대놓고 싫은 티

■ 질문 4: 이주민을 비난하는 인터넷 게시물이나 ‘악플’을 본 적이 있나?

자피라 “상처가 되는 댓글이 많더라. 인터넷에서 외국인 때문에 실업자가 많아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대학 다닐 때 중국인 친구가 편의점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한국말도 못하잖아. 너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일 못 한다’는 말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으로 생각하다 (당사자들이) 없는 데서 싫은 티를 내도 될 텐데. 대사관 손님들을 모시고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있다. 그분들이 대화를 하다 보면 시끄러워지기도 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러냐’ 그런 말이 들린다. 나는 한국말을 알아들으니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하다.”

모이누딘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기 위해 댓글을 읽는다. (이주민에 대한 나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가운데 몇 퍼센트(%)밖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선 꾸준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질문 5: 여러가지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인력난이나 대학 국제 경쟁력 강화 등 필요에 따라 이주민을 불러들이는 측면도 있다.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이누딘 “얼굴만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물론 다르게 생겼으니 궁금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10여 년이나 살았는데 매번 같은 질문을 받는다.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이었고 지금도 외국인일 뿐이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보단 한 개인의 인격체를 궁금해하면 좋겠다. 미국 뉴욕에 사는 사람들을 ‘뉴요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을 ‘베를리너’라고 부르는 것처럼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서울인’(Seoulite)이라고 하면 어떨까?”

히로코 “나 역시 동남아 분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같은 결혼이주여성이지만 그분들은 돈만 보고 한국에 온 거라고 생각해 정말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일본어를 가르쳐주다 알게 된 친구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짜오안> 전국 순회공연을 했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나도 공연팀을 따라다니면서 단편영화를 촬영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게 됐는데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 어쩔 수 없이 온 사람도 있고. 행복하게 살려고 온 사람도 있고. 나는 부모님한테 돈 타 쓰기 바빴는데 여기서 일해 고향에 돈 보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친구가 된 베트남 사람은 한국 남자와 이혼했다. 그 친구는 시어머니로부터 ‘돈 주고 사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인격 모독을 당하면 이혼할 수밖에 없었겠단 공감을 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이 바뀌니까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돕고 친구가 됐다. 강원도 지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공무원들에게 아는 이주민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없다고 하더라. 그때 충격을 받았다. 이주민을 만나는 사람들은 계속 만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전혀 만나지도 않고 교류도 안 한다. 이주민과 선주민(한국인) 자주 만나야 한다. 분리되는 건 싫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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