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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최민식 작가 덕분에 깨달은 ‘사진가 소명’ 실천할 뿐이죠”

등록 2017-10-09 19:32수정 2017-10-09 20:36

[짬] 전북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 오준규씨

9년간 ‘1129 장애인가정’ 가족사진
내년 10년째 1200가정 달성 목표
“쉬는 날 현장 돌며 나홀로 봉사”

가정형편 어려워 ‘사진’ 포기했으나
“사회공헌 예술이 최고” 용기 얻어
‘3가지 원칙’ 세워 철저한 자기관리

아마추어 사진작가 재능으로 장애인가정에 가족사진을 선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인 오준규씨.
아마추어 사진작가 재능으로 장애인가정에 가족사진을 선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인 오준규씨.
“돈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마음을 흐트러뜨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10년을 맞는 내년에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9년째 장애인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오준규(47) 사회복지사의 다짐이다. 전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그는 2009년부터 휴일이면 장애인가정 사진찍기 가욋일을 스스로 맡고 있다. 지난달까지 전북지역 14개 시·군을 돌며 1129가정을 촬영했다.

그는 사회복지 현장을 다니면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제한과 문화적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가족사진 한장 찍을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애인가정의 가족사진 욕구가 크지만 이를 충당하기에는 복지관의 예산을 비롯 촬영작가·스튜디오 등 녹록하지 않은 여건도 파악했다. 그래서 직접 장애인 가족사진 사업을 기획했다. 그는 고민 끝에 2009년 기부포털인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200만원을 모금해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업계획서를 내 3년간(2010~12년) 해마다 15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뒤 전북은행의 후원으로, 찾아가는 장애인가정 가족사진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은행은 해마다 500만~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쉬는 날이면 조명과 배경 스크린, 삼각대, 의자, 반사판 등 10여가지 소품을 복지관 승합차량에 싣고 각 지역 복지관에서 추천한 장애인가정을 찾는다. 현장에 나가면 발달장애인들의 돌발행동 등으로 예정시간보다 오래 걸리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한해 100가정 안팎을 찍어 10년이 되는 내년이면 1200가정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는 내년에는 동료인 사회복지 종사자 가정의 가족사진도 찍어줄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으나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부유한 사람들의 예술로 여기고 사진 공부를 스스로 포기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20대 시절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작가 고 최민식씨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사진을 통해 사회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있는 예술이 어디 있겠느냐”는 최 작가의 평소 가르침에 공감했다.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가난하더라도 사진을 통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졌다.

1998년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동안 사진작업을 하면서 화려한 겉치레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런 소박한 마음이 자신한테서 멀어져 갈 때 그는 일부러 카메라를 잠시 놓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볼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는 내용보다는 높은 기술의 사진을 추구하는 욕심이 들고, 명예를 좇는 마음이 들면 카메라를 내려 놓는 게 현명하다고 믿는다.

그는 사진작가로도 활약했다. 2007~08년 2년 동안, 장애인 부인과 딸을 둔 비장애인 할아버지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연작사진 <어느 노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2030청년작가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 추모 현장기록을 사진집 <그 아름다운 힘, 무릇 살아서>도 출간했다. 2009년 5월과 8월 두 전 대통령을 보내며 슬퍼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찍어 80여장으로 추려낸 것이다. 또 지난 3~4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집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가장 평화적인 시위의 표본’이라는 외국 언론들의 평가를 받는 탄핵 촛불집회의 모습을 기억하고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작품과 일반 시민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전주향교에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직장과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 그는 스스로 3가지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첫째, 업무시간에는 오로지 일만 한다. 둘째, 사진작업을 할 때는 사진만 생각한다. 셋째, 여가 시간에는 가족에게 몰두한다.” 그는 이런 ‘1인3역’을 위해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매일 6시간만 자며 자신을 관리한다.

그의 사진작업은 시대의 역사적 순간과 일상의 얼굴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의 기록은 이 시대에 관심받지 못한 개인·일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대한 자취를 기록해 역사에 편입시키고, 개입시켜 보려는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나는 이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그들의 역사를 써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기억장치를 통해 우리 삶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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