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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평짜리 월세방과 같이 삐걱거리는 ‘이케아의 낭만’

등록 2017-10-15 10:49수정 2017-10-15 17:04

[토요판] 이런, 홀로!?
‘이케아세대’의 가구 들이기
아직까지도 익숙한 건 ‘가성비 세대’답게 최저가 검색이고 가격 비교였다. 4평짜리 코딱지만한 집에서, 어차피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타의로 떠나야 될지도 모르는 집에서 이 집에 들어맞는 가구들을 산다고 한들 어차피 다른 공간으로 가면 버릴지도 모르는데. 게티이미지뱅크
아직까지도 익숙한 건 ‘가성비 세대’답게 최저가 검색이고 가격 비교였다. 4평짜리 코딱지만한 집에서, 어차피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타의로 떠나야 될지도 모르는 집에서 이 집에 들어맞는 가구들을 산다고 한들 어차피 다른 공간으로 가면 버릴지도 모르는데. 게티이미지뱅크

넘쳐나는 인테리어 정보들로
전·월세방을 꾸미는 사람들
‘내 집 같은 남의 집' 꿈꾸는
결핍된 청년들의 욕망이자 발악

쓰고 버려지는 이케아세대에게
고가 완제품 가구는 그림의 떡
삐걱대는 원목 테이블 다리 밑에
종이를 끼웠다…‘언제 또 버려질까'

“띵똥띵똥, 택배 왔습니다.”

요즈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택배 기사님이다. 택배 기사님만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없다. 퇴근할 때마다 시킨 게 있는지 없는지, 뭘 언제 시켰는지 잘 기억은 안 나면서도 습관처럼 무인 택배실을 꼭 들른다. 혹시나 내가 주문해 놓고 까먹었던 게 오진 않을까!

혼자 살다보니, 게다가 차도 없어 생필품 외엔 부피가 나가는 물건을 사 들고 오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요즘은 소셜코머스나 오픈마켓에서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차가 없어도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최근 혼족이 더 늘어나면서 온라인 마켓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해 일명 ‘자취템’ ‘혼족템’ ‘싱글템’에 주력하기도 한다. 자취템, 혼족템 등은 생필품 같은 소비재나 먹거리 외에도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물품이나 디아이와이(DIY) 가구까지 포함한다.

내 집 같은 남의 집

페이스북엔 온갖 원룸 혹은 작은 집 인테리어 게시물들이 넘쳐난다. 아예 그런 콘텐츠만을 만드는 페이지도 여러 개다. 어떤 중개업 서비스 앱은 효율적이고 저렴하며 가성비 있게 집을 꾸미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데, 내 집 구하기는커녕 전세금을 마련하는 것조차도 요원해지고 있다는데, 이러한 페이지와 정보는 넘쳐난다. 이뿐만 아니라 다이소, 미니소, 자주, 이케아 등에서는 4인 가족 외 혼족을 겨냥해 저렴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물건들을 꾸준히 생산해낸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혼족들은, 혹은 청년들은 어차피 서울의 수많은 아파트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전셋집이든 월세로 사는 방이든 자신이 사는 집을 온전히 ‘자신의 공간’처럼 꾸미고자 하는 욕구는 그래서 역설적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정말로 내 집 같은 남의 집. 온전한 내 공간은 비록 갖지 못하더라도, 주어진 계약기간만큼은 오롯이 나의 취향과 선택과 편의로 꾸려진 나의 독립적인, 내가 나일 수 있는, 휴식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일종의 결핍에서 오는 욕망이고 발악이다.

그러나 빈곤한 청년들은 자신의 공간을 꾸미기 위해, 대형 가구숍에 가서 이미 완성돼 있는 가구를 둘러보고 선택하고 큰돈을 들여 배송할 수 없다. 이들에게 이런 선택은 ‘스튜핏’일 뿐이다. 가성비가 가장 중요한 세대에게는 적은 돈으로 높은 만족감을 주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높은 만족감이란 절대적인 만족감이 아닌 오로지 가격 대비 성능이나 효용성을 의미한다. 물건의 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내가 직접 조립을 해야만 하더라도, 그래서 설령 그 조악한 조립 때문에 고장이 조금은 잦더라도, 일단 지금 빈곤한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그럭저럭 쓸 만한 질 정도의 혹은 조금 더 높은 질의 값싼 물건들이다.

유럽에서는 한때 고용이 불안정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고, 인턴이나 파트타이머로 저임금 단기간 노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이케아 세대’라고 일컬었다. 저렴해 진입 장벽은 낮지만 그에 비해 당장의 질은 어느 정도 보장되는, 그러나 금방 낡거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다른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이케아’라는 브랜드의 성격에서 따온 단어다. 다시 말해 이케아 세대는 임금에 비해 그럭저럭 쓸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단기간 고용해 쓰고 버리는 형태의 일자리에서 노동하는 유럽 청년들의 초상이다. 한국의 대다수 혼족 청년들에게는 이케아의 가격마저 버겁다. 이케아의 디자인과 느낌을 비슷하게 따라하되 조금 더 낮은 질과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더욱 인기다. 물론 질은 보장할 수 없다.

월세살이가 다 그렇듯 나는 이사가 잦았고, 잦은 이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최대한 짐을 줄이며 살고 있었다. 7년 동안 살았던 혜화에서 선유도로 이사오기 전 짐 정리를 하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자주 삐걱삐걱 대던 침대, 밥상으로 쓴 좌식 책상, 밥솥과 잡동사니를 올려두던 다용도 장, 옷걸이, 화장대 등. 내 공간에 있는 모든 가구가 이케아 제품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저렴한, 더 질 낮은 물건이었다.

디아이와이 가구를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하는 나만의 시간을 통해 가구의 소중함을 알고 비로소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낭만적이다. 이미 완성도 높게 제작된 가구를 흠집 하나 없이 안전하게 편하게 배송받고 싶다, 나도. 내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디아이와이도 그게 한두 개여야 말이지. 디아이와이 가구는 운이 좋게도 크게 고장 난 적은 없었지만 미묘한 한두 개가 말썽이었다. 다리의 길이가 미묘하게 달라 흔들거리던 책상과 스툴, 조금만 양옆으로 흔들려도 곧 무너질 것처럼 무게를 견디지 못하던 화장대, 삐걱거리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던 침대. 당장 쓰기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눈에 거슬리는 게 많은 가구들이었다.

새로 이사 온 공간을 채울 때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사회 초년생인 내게 아직까지도 익숙한 건 ‘가성비 세대’답게 최저가 검색이고 가격 비교였다. 4평짜리 코딱지만한 집에서, 어차피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타의로 떠나야 될지도 모르는 집에서 이 집에 들어맞는 가구들을 산다고 한들 어차피 다른 공간으로 가면 버릴지도 모르는데. 넓어봤자 6평 정도인 좁은 원룸들을 전전하면서 깨달은 것은 같은 평수의 방일지라도 구조는 다르고 그에 들어갈 가구마저 제한될 수 있다는 거였다. 심지어 5평에 살다 6평에 가더라도 기존의 가구나 물건을 가져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마치 좀 더 비싼 돈을 들여 좀 더 오래 입을 옷을 고르듯이, 좀 더 비싼 금액을 들여 오래 쓸 가구를 고를까 고민하다가도 당장 몇 개월 뒤 내가 어느 공간, 어떤 공간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물론 또다시 하게 될 이사에서 최대한 짐을 줄이자는 생각도 함께.

역시 이케아 세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이케아 혹은 이케아 하위 브랜드에서 제작하는 물건들이다. 분명히 소득은 과거에 비해 늘었지만 여전히 당시의 습관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불가능한 내 공간(집) 마련, 높은 월세와 물가에 비해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형태, 불확실한 업종의 미래에서 어쩌면 가성비 지향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져갈 생존의 방식이 아닐까. 과거 집 앞의 6000원짜리 청국장 앞에서 고민하다 결국 1800원짜리 편의점 김밥 한 줄로 돌아섰다면, 지금은 역시나 청국장이 아니라 4000원짜리 도시락 앞에서 서성이는 것처럼.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가 국내에 처음 문을 연 2014년 12월18일, 경기도 광명시 매장 앞에 입장하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광명/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가 국내에 처음 문을 연 2014년 12월18일, 경기도 광명시 매장 앞에 입장하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광명/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언제 또 버릴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퇴근 뒤 배송된 테이블을 조립했다. 이사 온 뒤 임시방편으로 장기간 사용하던 책상이자 식탁이던 짐 박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월급날 구매하게 된 테이블이다. 받자마자 뜯어본 택배 박스에서 꺼낸 원목 테이블의 색은 생각보다 노리끼리했다. 나름대로 전체적인 집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결정한 물건을 여러 오픈 마켓과 소셜에서 찾아 가격을 비교했지만 정작 색깔에 실패했다. 어쩌겠나, 이걸 다시 차곡차곡 포장해 그 비싼 배송비를 물고 또 택배 기사님과 연락해 물건을 반품할 여력이 나에겐 없었다. 혼자 바닥에 퍼질러 앉아 조립을 시작했다. 자취 7년차, 이제 웬만한 디아이와이 가구 조립은 껌이다.

생각보다 테이블은 튼튼했지만 역시나 네 다리와 테이블 몸통이 만나는 어느 곳이 약간 삐끗한 듯했다. 어느 쪽의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리 길이가 미묘하게 달라 테이블이 흔들거린다. 아, 분명 겉은 아주 멀쩡한데. 대충 더 짧아 보이는 다리 밑에 얇은 종이를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벼워 4평짜리 좁은 집에서 몸을 움직이다 부닥치면 덜컹하며 제멋대로 이동한다. 어쨌거나 이제 글을 쓸 때 올려놓을 책상이 되기도, 밥을 먹을 때 안정적으로 음식들을 올려놓을 널찍한 식탁이 될 것 같다. 언제 또 버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이 4평짜리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낼 테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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