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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용수 할머니 말씀 듣고 ‘위안부 기림비’ 모금 나섰죠”

등록 2017-10-15 19:24수정 2017-10-17 14:53

【짬】 재미동포 치과병원장 김한일 대표

미국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제작한 스티븐 화이트 작업실을 찾은 김한일(오른쪽) 김진덕정경식재단 대표와 그의 누나 김순란(왼쪽)씨가 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순란씨는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제작한 스티븐 화이트 작업실을 찾은 김한일(오른쪽) 김진덕정경식재단 대표와 그의 누나 김순란(왼쪽)씨가 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순란씨는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재미동포 김한일씨는 6년 전 두달 간격으로 돌아가신 부모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2012년 10월 설립한 재단의 이름은 ‘김진덕정경식재단’이다. 치과의사인 김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새너제이 지역에서 의사만 14명인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은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실리콘 밸리 지역의 정보통신기술 붐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것도 그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서라벌고 1학년 때 가족 이민으로 미국 땅을 밟은 김 대표가 지난 1년 매달린 일이 있다. 바로 ‘위안부 기림비 건립’이다. 지난 12일 애서튼 자택에 머물고 있는 김 대표를 전화로 만났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제막
‘미국 대도시 첫 건립’ 한인 후원 앞장
“조각가 8번 찾아가 디자인 바꿨죠”

5년전 아베 ‘독도 영유권’ 주장 맞서
부모 이름 딴 ‘김진덕정경식재단’ 세워
“백악관 10만명 청원 등 ‘우리땅’ 운동”

김한일 김진덕정경식재단 대표는 ‘동해와 독도 이름 찾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김한일 김진덕정경식재단 대표는 ‘동해와 독도 이름 찾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달 22일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인 세인트메리스 스퀘어파크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미국 대도시에서 처음 등장한 이 기림비 건립은 중국계 판사 두 명이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20개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CWJC)가 주도했다.

“기림비 디자인 협의를 위해 조각가 스티븐 화이트의 작업실이 있는 카멀을 8번이나 찾았어요.” 김 대표 집에서 카멀까진 차로 3시간 걸린다. 애초 화이트가 그린 도안엔 중국·필리핀·네덜란드 소녀가 위에 있고, 아래서 이용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제 기림비는 한국·중국·필리핀 소녀가 위에 있고 고 김학순 할머니(1924~97)가 쳐다보는 모습으로 수정됐다. “한국인 소녀가 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아래는 처음으로 용기있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김학순 할머니였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고요. 다행히 중국계 판사 두 분이 제 의견을 받아들였어요.”

그의 바람이 수용된 데는 기림비 건립 과정에서 보여준 헌신적 태도가 적잖이 작용했을 듯하다. “기림비 제작비 70만달러 가운데 한국계가 48%를 부담했어요.” 김 대표가 모금 운동에 나선 건 지난해 8월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기림비 건립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11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해 8월 이용수 할머니와 밥을 먹었어요. 한국계도 건립 운동에 참여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사실 2015년 이용수 할머니가 시의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어요.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 뒤 일주일 만에 그는 두 판사를 만났다. “두 판사께서 제작비 40만달러 중 10만달러 분담을 부탁했어요.” 바로 모금에 나서 열흘 만에 목표치를 뛰어넘어 14만달러를 모았다. “미 정부에서 노후연금으로 800달러 정도를 받는 어르신 100여명이 5달러, 10달러씩 냈어요. 한인학교 학생들도 1달러씩 냈죠. 1차 모금에 500명, 2차 모금엔 300명이 동참했어요.”

기림비 디자인을 바꾸며 발생한 비용이나 제막식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 광고비 등은 그가 부담했다.

기림비 제막식을 앞두고 김 대표가 사재를 들여 샌프란시스코 주변에 설치한 행사 알림 광고판.
기림비 제막식을 앞두고 김 대표가 사재를 들여 샌프란시스코 주변에 설치한 행사 알림 광고판.
사실 미국 이민 뒤 그의 머릿속에 늘 맴도는 생각은 ‘동해 표기’와 ‘독도 문제’였다. 올해 17살인 그의 아들도 어렸을 때 왜 자기가 배우는 교과서에 동해가 일본해로 적혀 있는지 질문했단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에서 저에게 행사 후원을 요청했어요. 부친이 생전에 매년 5천달러씩 후원하셨거든요. 저는 처음엔 한인회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일본 아베 총리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뉴스를 티브이에서 봤어요. 화가 났죠.”

생각을 바꾼 그는 부모 이름을 딴 김진덕정경식재단을 만들어 ‘독도는 우리땅’ 캠페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실제 재단 사이트(jnkfoundation.com)를 보면 ‘독도 캠페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재단 설립을 즈음해 그는 구글이 독도 표기를 ‘리앙쿠르트 암초’로 바꾼 걸 발견하고 독도 이름 되찾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백악관 청원 서명과 구글 시이오에게 편지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백악관 청원은 5개월 만에 10만명, 편지 보내기엔 1만명이 참여했어요. 북캘리포니아 동포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2013년엔 세계야구클래식 경기가 열린 에이티앤티 야구장 주차장 한복판 등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광고판도 세웠다.

그의 부친(김진덕)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였다. “아버지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1년 다니던 감사원을 그만두셔야 했어요. 그 뒤 민간기업을 다니다 앞서 이민을 간 큰누나 초청으로 76년 가족 모두 미국으로 왔죠.” 부친은 주류 판매와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일궜고, 초대와 2대 미주 호남향우회 총연합회장을 지냈다. 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생활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이 서부를 찾을 땐 꼭 부친의 집에 들렀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스탠퍼드대 강연차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에게 ‘네 부친을 존경한다’고 그러시더군요. 대통령 재직 때 모두 ‘한자리’ 달라고 그랬는데, 부친은 그러지 않았다면서요.”

바둑기사 조치훈은 그의 고모 아들, 그러니까 사촌이다. “감사원을 다니던 아버지가 감사원장에게 부탁해 치훈·상연 형제가 일본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하셨죠.” 김 대표의 모친(정경식)은 영남 출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끼던 과학자 정만영 박사가 외삼촌입니다.”

스티븐 화이트가 그린 기림비 조형물 디자인. 김 대표는 지난 6월 미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직접 만나 이 그림을 전달했다고 한다.
스티븐 화이트가 그린 기림비 조형물 디자인. 김 대표는 지난 6월 미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직접 만나 이 그림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성 인신매매’(sex trafficking) 근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성 인신매매는 지금도 러시아나 중국에서 심각합니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성 인신매매를 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일본도 동참해 같이 풀어갔으면 좋겠어요. 아베 정권에서 변화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다음 정부에선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는 평생 소원이 미국 땅에서 동해 표기가 공인받는 것이라면서 미 지명위원회가 정책을 바꾸도록 한국 정부가 적극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한일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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