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소방공무원 임부복 2000년대 첫 도입 원피스와 고무밴드로 신축성·활동성 더해 초기엔 ‘공식행사서 입지말라’ 흑역사도 한해 수백명 신청…달라진 ‘제복 입은 여성상’ 반영
한 소방공무원이 임부복을 입고 있다. 소방청 제공
정경화 서울 양천경찰서 신월2지구대 경장(32)은 임신 4개월째였던 지난해 5월 동료들에게 말 못 할 고민에 빠졌다. 임신한 뒤 현장 순찰 대신 지구대에서 신고상황 관리 업무를 맡았지만 근무복을 입고 장시간 앉아 일하는 게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신축성 없는 근무복 바지가 불러오는 배를 조이는데 남자 직원도 많아 바지 단추를 몰래 풀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원피스 디자인의 임부 근무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씨는 “주변에선 아직 임신 4개월인데 왜 이렇게 임부복을 빨리 입냐고 했지만 임신부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편안한 근무복을 입고 싶었다. 디자인도 세련된 편이라 육아휴직 전까지 불편함 없이 제복을 입고 근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다수가 남성인 이른바 ‘제복 입는 조직’에서 여성들은 남성 동료와 다를 바 없이 현장을 누빈다. 하지만 임신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체중 증가나 체형 변화로 인해 일반 근무복 착용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복을 벗어 던질 수도 없는 일. 이런 애로사항을 해소하고자 임부 근무복이 도입됐지만, 아직까지 시민들에게 그 존재는 낯설다. ‘엄마 경찰’, ‘엄마 군인’들의 ‘D라인 패션’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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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방공무원 임부복…2000년대 도입돼 경찰은 지난 2004년 임신한 여성 경찰공무원의 편의를 고려해 임부복 형태의 근무복을 처음 도입했다. 디자인은 원피스형과 2012년 추가된 상·하의(신축성 원단과 고무밴드를 사용한 바지)형태 2가지가 있다. 올 1월부터 10월 현재까지 전국 550여명의 여성 경찰관에게 임부복이 지급됐다. 2013년부터 491명, 2014년 412명이 임부복을 신청하는 등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400여명이 임부 근무복을 찾았다. 경찰청 장비계 관계자는 “임부복은 일생에 한 두번 입는 옷이다 보니 예전에는 동료들 간에 서로 물려주는 식으로 빌려 입는 일이 많았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신청 숫자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원피스 형태의 경찰공무원 임부복. 경찰청 제공
임신한 소방공무원 역시 ‘원피스 제복’ 형태의 임부복을 착용한다. 소방청은 경찰보다 3년 앞선 지난 2001년 임부 근무복을 도입해 지급해 왔다. 원피스 형태의 임부 근무복 1종류만 제작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경우 10월 현재 28명의 여성 소방공무원이 임부복을 입고 근무 중이다. 임신 6개월 차인 문진실(28) 동대문소방서 예방과 주임은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6주차 때부터 임부복 착용했다. 일반 근무복과 비교해 임신 후 불러오는 배를 조이지 않아 활동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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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행사서 입지말라’ 차별한 흑역사도 경찰과 소방공무원 임부 근무복이 정착하기까지, 여성 공무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흑역사’도 있었다. 경찰의 경우 임부 근무복이 도입된 이래 지난 2009년 말 ‘경찰복제에 관한 규칙’이 개정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여경은 경찰 공식행사에서 임부복을 착용할 수 없었다. 당시 복제 규칙이 규정한 예장의 범주에 임부복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경찰 복식의 착용 구분에 대한 규칙’은 ‘행사를 주관하는 경찰기관의 장은 필요하면 행사에 참석하는 여자 경찰관에 대해서는 정복 하의 중 치마 또는 바지를 지정할 수 있고, 임산부의 경우 임부복을 착용할 수 있다(제13조 2)’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재질과 디자인을 개선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공식행사에서도 임부복을 착용할 수 있게 규칙이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소방공무원의 임부 근무복 역시 원피스 형태 1종류만 있다 보니 과거 임신한 구급대원이 현장에 출동할 때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구급차에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신한 여성 소방공무원과 태아의 건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임신한 대원의 보직을 내근 업무로 변경하고 있어 임부복을 입고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공무원의 모습은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소방청은 지난 2월 소방공무원의 복제 개정을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 용역을 맡긴 상태다. 올 연말 소방공무원의 새로운 임부 근무복의 모습을 담은 연구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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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248명 ‘엄마 군인’도 임부복 찾아 군인의 경우 육·해·공군 등으로 조직이 나누어져 있어 임부 근무복이 지급된 시기도 각각 다르다. 육군은 1989년, 해군은 2001년, 공군·해병대 2002년부터 임신한 여군을 위해 임부 근무복이 도입됐다. 올해 육군 145명, 해군 50명, 공군 45명, 해병대 8명 등 모두 248명의 ‘엄마 군인’들이 임부 근무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했다. 군 임부 근무복 디자인 역시 경찰과 마찬가지로 원피스형과 상·하의 스타일 2가지 종류를 갖췄는데, 바지의 경우 다리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군복보다 폭을 넓게 만든다.
1982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는 미국 뉴욕 경찰국이 여자 경찰관을 위해 세계 최초로 임부용 경관복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뉴욕 경찰 중 40살 미만인 여성 경찰관 수는 1400명이었고, 이 중 24명이 임신한 상태였다. 그 이전까지 임신한 여경들은 배가 불러오면 일반 근무복을 입을 수 없어 만삭이 되면 평상복을 입고 근무해왔다고 기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지금, 제복을 입은 여성 공무원의 삶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변화된 임부 근무복이 말해주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