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시외버스 노조 소속 기사들이 파업이 돌입한 3일 한 버스정류소에 버스들이 정차해 있는 모습. 경남도정뉴스
3일 오전 부산·경남 지역민들의 발이 묶였습니다. 전국자동차 노동조합연맹 경남본부가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인데요. 시외버스의 50.1%(671대)와 시내·농어촌버스의 16.3%(277대)가 멈춰 섰습니다. 시외버스의 파업률이 높아 경남과 부산을 오가는 통근 직장인과 주말을 앞두고 나들이 가려던 여행객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시외버스 업체 25곳의 기사 2400여명이 소속된 노조는 지난 7월 28일부터 6차례 진행한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 7%(14만4700원) 인상, 근무 일수 1일 단축 등 4개 사항을 요구했지만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경남도는 밤사이 노조와 사측을 상대로 파업 중단을 요청하며 설득에 나섰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경상남도 시외버스 노조 소속 기사들이 파업이 돌입한 3일 오전 부산 사상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 시외버스가 멈춰서 있다. 연합뉴스
버스회사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한 상태로 오는 16일에 노동위의 결정이 난다”고 주장하며 “노사의 단체협약상 ‘중재조항’에 근거한 것으로 중재 기간 중 파업은 불법”이라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노조 쪽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987년 이후 30년 만의 파업인데 사측이 한쪽의 일방적인 요청으로 중재 신청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악용하고 있다”며 “독소조항 삭제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하면 우리는 단결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 쏟아지는 보도들 ‘시민들 발 동동’
버스 파업이 본격화하자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요. 파업 이유에는 별다른 관심 없이 이동할 적절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한 시민들의 불편함을 묘사한 언론 보도가 많았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내가 매일 이용하는 고객인데 어떠한 이유라도 파업은 비난한다 경남고속버스 서비스 저질인데 점점 정떨어진다.”(트위터 아이디 @ajyc****)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런 것입니다. 무조건 안 들어주면 무력행사나 하고.”(트위터 아이디 @gyus****)
하지만 파업을 응원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나는 불편하겠지만 이번 파업 찬성함. 버스 택시 회사 사업주들 이번 기회에 한번 철저하게 조사해 봐야 함.”(트위터 아이디 @sang****)
“버스 운전사는 운전사 한사람 몫의 생명이 아닌 이용하는 승객 모두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책임에 맞는 임금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기사들의 건강이 곧 승객의 안녕으로 직결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트위터 아이디 @swir****)
■ 2015년 버스 사고 ‘8744건’, 사망자 ‘189명’
정확히 1주일 전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는 ‘경부 7중 추돌사고’ 버스 기사 김아무개(51)씨의 3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지난 7월 9일 서울시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도로에서 한 광역버스가 승용차 6대를 잇달아 들이받았던 사고 말입니다. 당시 사고로 버스에 직접 들이받힌 승용차(K5)에 탑승해 있던 50대 부부가 숨졌고, 16명이 다쳤습니다.
조사 결과, 김씨는 거의 쉴 틈 없이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고 전날(8일)에는 총 18시간 30분을 일했고, 5시간 30분 잔 뒤 사고 당일(9일) 다시 운전대를 잡았죠. 사고 나흘 전과 사흘 전인 5일과 6일에도 모두 출근해 하루 16시간씩 모두 32시간을 운전했습니다.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한 버스 졸음운전 사고 현장. 연합뉴스
뿐만 아닙니다. 지난 9월 2일에도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가 앞서 달리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당시 버스 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졸음운전 사고로 추정했었죠.
도로교통공단의 ‘사업용 차량 버스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버스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고 건수는 2011년 8287건에서 2015년 8744건으로 5.5%p 늘었고요. 사망자 수는 2011년 199명에서 2013년 175명으로 주춤했지만, 2015년에는 다시 증가해 189명이 버스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대형버스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버스 운전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경상남도 시외버스 노조 소속 기사들이 파업이 돌입한 3일 오전 부산 사상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 시외버스 운영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 “문제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야”
사회공공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자료를 보면, 버스 운전기사들은 객관적으로도 열악한 조건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노선 버스업 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하루 11.7시간, 주간 58.3시간, 월평균 253.9시간으로 집계됐습니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농업 제외)의 월평균 노동 시간(179.9시간)보다 74시간이나 많은 것이었습니다. (
▶참고 자료: 버스·화물 운전시간 규제의 해외 사례와 시사점)
최근에 사고가 이어지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입니다. 지난 7월에는 버스 운전기사 등 노동자로 하여금 무제한 연장근로를 가능케 했던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중에서 노선버스 운수업을 폐지하기로 국회가 잠정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가 곧바로 현실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국 자동차노조 경남본부 관계자는 “최근 시행령 개정으로 1일 휴게시간을 8시간 부여하고, 2시간 운행하면 15분 쉬도록 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휴게시간이 8시간이라고 해도 출퇴근 시간은 포함되지 않고 또 근무표가 꼬이면 하루 열 몇 시간, 한 달에 26~27일씩 일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 노조 요구는 겨우 ‘하루 10시간, 월 20일 근무’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볼 것은요. 노조 쪽의 요구가
하루 10시간, 20일 근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조 쪽의 요구가 관철된다고 하더라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유럽연합(EU)의 규정을 보면, 1일 최대운전시간은 9시간이며 1주일에 2번까지만 최대 10시간까지 연장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4시간 연속 운행 시 30분의 의무 휴게시간을 주며, 근무가 끝난 뒤 다음 근무까지의 휴식시간은 최소 11시간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버스운전자가 연속 8시간 휴식을 취한 뒤 최대 10시간까지 운전이 가능하고, 15시간 이상 운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이웃 나라인 일본도 1일 최대 9시간, 1주 최대 40시간(전세버스는 연장 가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일 연속 휴식시간은 8시간, 연속운행 시간은 4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대통령도 버스 교통사고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며, 나라다운 나라의 출발점”이라며 버스와 화물차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버스 운전기사의 노동 환경 개선이 결국 버스를 이용하는 우리의 안전과 무관하지 않음을 아시겠지요? ‘잠깐’ 불편하다고 해서 ‘불안’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상 ‘더(the) 친절한 기자’ 이재호였습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