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남원 한 정착촌에서 만난 김정은(가명)씨 부부가 그 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남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결혼해 아이낳고…우리 행복해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밤 울며 기도했지만, 그럴수록 더 좋아졌어요. 편견과 차별, 그리고 가난,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설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겨냈지요.” 국립소록도병원 간호조무사였던 김정은(39·전북 남원·가명)씨는 1988년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병력자 최동길(42·가명)씨와 결혼했다. 사람들이 한센병 환자를 아직 ‘문둥이’로 부르던, 편견으로 가득 찬 시절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씨는 최씨와 결혼해 겪어야 할 고통들이 두려웠고, 반년동안 최씨를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그는 “운명이라면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일단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뒤 소록도병원을 떠났어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료들 모두 한센병력자는 감기병력자와 다름없는 ‘정상인’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제가 한센병력자와 교제한다고 하니 시선이 곱지 않더라구요.” 김씨의 언니는 “한센병력자와 결혼하면 인연을 끊겠다”며 으름장을 놨고, 어머니는 “말 같은 소리 마라”며 두 사람의 사랑을 무시해버렸다. 아버지한테는 아예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김씨는 “단지 한센병력자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신앙인이냐”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가족들을 설득했고, 가족들은 마지못해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했다. 김씨는 “신앙 덕에 다른 ‘간호사-한센병력자’ 부부보다는 집안의 반대가 덜 했다”면서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가 ‘왜 너희 둘이나 그렇게 살지 애까지 낳느냐’고 나무랄 때는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역시 한센병력자인 최씨의 형 동현(44·전북 남원·가명)씨도 1988년 소록도병원 간호사인 이정란(41·가명)씨와 결혼했다. 이씨는 친정어머니 손에 이끌려 소록도에서 끌려나오는 등 열번도 넘게 최씨와의 이별을 강요당했다. 결국 가출을 감행한 뒤에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친정식구들은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친정어머니는 이씨 부부가 친정집을 왕래하기 시작한 뒤에도 한동안, 이씨 부부가 다녀가면 그릇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이불을 새로 빠는 등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최씨 형제의 두 아내들은 “서로 아껴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지금은 친정 식구들 모두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사람들도 한센병력자와 결혼해 애까지 낳고 살아도 ‘멀쩡한’ 우리를 보며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원/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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