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3년 12일12일 오전 국회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국정원이 마련한 자체개혁안을 보고하려고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6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및 공개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부분은 크게 두 갈래다. 국정원이 대화록을 발췌해 청와대에 전달한 비밀기록물을 외부에 유출한 사건(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의 전모와,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불법 혐의(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를 밝혀달라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두 사안 중에 ‘비밀기록물 외부 유출 사건’의 파괴력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개혁위는 국정원이 청와대에 전달한 발췌본의 유출처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을 지목했고, 유출 시기도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로 파악했다. 당시 외교안보수석실의 누군가가 ‘윗선’의 지시로 코앞에 닥친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비밀기록물을 언론과 정치권 등에 흘린 정황이 뚜렷하다. 당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그해 12월14일 부산지역 대선 지원 유세에서 이 발췌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을 대중에게 공표했고,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월간조선>도 같은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대화록을 김 의원 등에게 넘겨줬거나 넘겨주도록 했는지를 밝히는 게 검찰 수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김 의원이 당시 대화록 발췌본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조사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이에 앞서 발췌록 유출처로 지목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에서 대화록 발췌본을 각각 전달받은 당사자인 김성환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이 조사 대상이다. 특히 김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김병국-김성환-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자리를 바꾸는 동안 꾸준히 통일·외교안보 라인을 지켜온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그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과거의 검찰 수사 행태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무성 의원이 국정원이나 청와대 등을 통해 대화록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언론에 대화록 내용이 어느 정도 보도된 상태여서 그 정도 발언은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를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반면 검찰은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 원본 삭제를 지시했다’고 결론 내리고 그 지시를 따른 백종천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비서관(현 통일부 장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해 편파 수사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한편,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오는 8일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서도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이날 개혁위가 “2013년 6월24일 남재준 전 원장이 간부회의 일부 참석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소신’이라며 무려 103쪽에 이르는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것이 국정원직원법 위반이라고 판단해”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8일 남 전 원장을 조사할 때 당시 회의록 공개 과정에서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확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