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륜관계를 맺은 남자한테서 받은 약속어음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1988년 3월부터 유부남 ㄱ씨와 동거를 시작한 ㄴ씨(여)는 관계가 소원해질 무렵인 90년 ㄱ씨한테 1억원짜리 약속어음을 받았다. 동거남한테 다른 여자가 생길 것을 염려한 ㄴ씨는 이때 ‘2001년 12월 31일 이전에 헤어질 경우에만 위자료 명목으로 돈을 지급한다’는 합의각서까지 받아뒀다. 앞서 89년에도 ㄱ씨로부터 ‘당신과 나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를 지불일로 하는 5천만원짜리 약속어음 2장을 받아둔 터였다.
그러나 92년 ㄴ씨가 그를 폭력행위로 고소하면서, 두 사람은 사실상 헤어졌다. 그 뒤 ㄴ씨는 ㄱ씨가 장모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부동산에 그의 아내가 전세권설정등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별다른 재산이 없는 ㄱ씨한테 약속어음금을 받아내기 위해, ㄴ씨는 “나한테 빌려간 3억원으로 산 부동산이니, 소유권을 ㄱ씨한테 돌려놓으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이윤승)는 1일 “선량한 사회풍속에 어긋나는 불법조건 아래 일어난 법률행위는 무효”라며 “동거관계를 청산할 때 위자료 명목으로 어음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교부한 약속어음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불확실한 날을 만기로 정한 어음은 무효이므로, ‘당신과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를 만기로 표시한 5천만원권 약속어음 2장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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