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5일 문을 연 ‘치안1번가’ 누리집 모습.
경찰 경력 12년 차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허재영 경위(39)는 근무 경력 가운데 10년을 홍보실에서 보냈다. 조간신문 스크랩과 저녁 뉴스 모니터링 때문에 새벽에 출근해 늦은 밤 퇴근하기 일쑤인 홍보실은 경찰청 내 비인기 부서로 꼽힌다. 현장 업무와 거리가 멀어진 ‘경찰 아닌 경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허 경위는 “홍보실 생활 덕분에 다른 경찰들보다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경찰의 치안정책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고 했다. “기존 정책홍보는 경찰이 알리고 싶은 내용을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던 허 경위는 지난 9월 ‘치안1번가’(www.police1st.go.kr)라는 치안정책 쇼핑몰을 만들었다.
‘치안1번가’는 학교·아동·가정·성폭력 등 사회적 약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 범죄에 대한 치안정책을 소개하고, 국민 제안을 받는 ‘치안정책 쇼핑몰’이다. 예를 들어, 누리집에 접속해 ‘스토킹·데이트 폭력 현장조치 강화’ 상품을 구매하면, 경찰의 ‘스토킹·데이트 폭력 매뉴얼 제작’, ‘피해자 보호제도 안내’에 대한 내용을 전자우편 등으로 안내받는 구조다. 정책을 구매한 시민들은 구매 후기에 치안정책에 대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댓글로 남길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전후 운영한 ‘문재인1번가’와 ‘광화문1번가’를 벤치마킹해 만든 ‘치안1번가’는 지난 9월25일 문을 연 뒤 한달반 만에 방문자수 21만명을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달 23일 대구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호평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허 경위는 “최근 경찰이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협약을 체결해 치매노인 실종을 예방할 수 있는 ‘배회감지기’ 8000개를 무상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민들이 이를 잘 몰라 안타깝다”며 “시민들이 경찰의 치안서비스 내용을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 쇼핑몰 콘셉트의 ‘치안1번가’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홍보’에 대한 허 경위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허 경위는 2014년 어린이들에게 경찰업무를 홍보하기 위해 동요 ‘경찰 아저씨’와 만화영화 ‘꼬마경찰관 현이’를 제작해 어린이 전용 인터넷 포털에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5살이었던 아들이 “유치원에서 소방관 노래는 배웠는데, 경찰 노래가 없다”며 칭얼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계기가 됐다. ‘꼬마경찰관 현이’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7만회을 넘기기도 했다.
‘치안1번가’에서 가장 많은 시민이 구매한 치안정책은 9일 오후 기준 모두 8045명이 구매한 ‘스토킹·데이트 폭력 현장조치 강화’다. 7639명이 구매한 ‘학교폭력·아동범죄 예방’도 선호도가 높다. 시민들이 ‘상품평’ 형식으로 제안하는 의견 중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많다. 허 경위는 “한 시민이 ‘여성범죄 안전환경 조성’ 정책과 관련해 ‘신축 건물에 의무적으로 방범창을 설치하는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의견을 남겼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대구시 등 관련 기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