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공연 '클래식 스페이스 2 함께'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앵콜을 연주할 참이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이 갑자기 무대에 올라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송윤호(13)군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멈칫했던 연주자들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최수열 지휘자는 송군에게 지휘봉을 건넸고,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송군의 지휘에 맞춰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연주했다. 탱고의 선율이 무대에서 울려퍼지자 송군처럼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무대에 올라 춤을 췄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지난 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발달장애아동을 위해 마련한 ‘클래식 스페이스 2 함께’ 공연이 끝날 무렵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향이 발달장애아들을 위해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기공연 중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가 객석에서 비명을 질렀다. 부모는 아이의 입을 막고 황급히 퇴장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논쟁이 붙었다. 발달장애아동들이 다른 관객의 ‘공연 볼 권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발달장애아동의 ‘공연 볼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붙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논쟁에서 오히려 아이디어를 얻었다. 논쟁으로 그칠 게 아니라 발달장애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무대만큼이나 객석도 자유로운 공연이었다. 음악에 맞춰 폴짝폴짝 뛰는 아이, 노곤한 표정으로 조는 아이, 넋 놓고 음악에 집중하는 아이들 사이로 모차르트의 기악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흘렀다. 객석에는 10인용 원형 테이블 20개가 설치됐다. 아이들이 부모님과 눈을 맞출 때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반영해 서울시향이 원형테이블로 객석을 꾸민 것이다. 아이들은 가족들의 품에 안겨 귀엣말을 나누면서 공연을 즐겼다. 발달장애인 박성민(22)씨의 어머니 이흥자(54)씨는 “평소에는 아이가 소리를 내면 자제시켜야 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아동들은 마음편히 클래식 공연을 즐기기 어렵다.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의 공연 에티켓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바이올리니스트 곽동규군의 아버지 곽희문(48)씨는 “발달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아이가 주변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있다. 우리 아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면 몸을 흔드는 식으로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발달장애아동들의 즉흥적인 행동도 공연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는 공연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예술단체인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의 권지현 연구원은 “아이들의 돌발적인 행동을 공연의 한 요소로 보고 배우나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공연이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충분히 공연을 같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대에 갑자기 올라온 발달장애아동에게 앵콜 지휘를 맡긴 서울시향의 이번 공연은 그런 점에서 모범적이었던 셈이다. 공연을 마친 지휘자 최수열씨는 “오늘은 청중들에게 힐링을 드리려다 오히려 우리가 치유를 받았다. 이런 공연이 특별한 게 아니라 너무 흔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시향 단원 한 명이 “선생님보다 지휘 잘 하던데요?”라고 말하며 지나가자, 최씨는 “저 말이 맞다”며 크게 웃었다.
글·사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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