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전 동티모르 대통령 하무스 오르타
제주4·3 현장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조제 하무스 오르타 전 동티모르 대통령이 던진 키워드는 ‘진실 규명’과 ‘용서’와 ‘화해’였다.
제주4·3평화재단이 마련한 제7회 ‘제주4·3평화포럼’ 참석차 지난 9일 제주를 방문한 그는 첫 일정으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둘러봤다. 1만5천여명의 위패를 모신 봉안소와 행방불명인 2500여명의 비석이 있는 표지석을 찾은 그는 주의 깊게 하나하나 살펴봤다. 하무스 오르타 전 대통령은 동티모르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07~2012년 동티모르 2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평화공원 조형물을 보고 매우 감동했다. 이렇게 많은 희생자와 행방불명인이 있는 데 놀랐다. 제주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지역에 대한 인류의 의무는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름을 찾아주고, 정의 실현의 용기를 기억하는 일”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추구하는 제주4·3평화공원의 목표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종교적 이유나 오해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지만, 좀더 중요한 것은 희생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진실 왜곡이 없는 매우 진지하고도 체계적인 학문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과거의 오류를 배우고 희생자를 위로하며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통해 하나가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의 인질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주를 방문한 것은 1998년 제주4·3연구소 등이 4·3항쟁 50돌 기념으로 마련한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동티모르의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권’을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두번째다.
‘제주4·3평화포럼’ 기조강연 맡아
1998년 ‘항쟁 50돌’ 이어 19년 만에
4·3평화공원 참배 “존경스럽다” 2002년 동티모르 독립 이후 4년간
진실화해위 가해·피해 증언 기록
“북핵도 대화로 풀어야 평화공존”
그는 “동티모르도 일본의 침략(1941~45)으로 4만~7만여명이 숨졌고, 인도네시아의 24년간에 걸친 점령(1975~99)으로 20만여명이 희생됐다. 내 가족도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인의 4·3 해결 과정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1974년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서 철수하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점령했고, 이에 독립을 요구하는 동티모르 주민의 저항이 24년 동안 지속됐다. 동티모르 사태가 국제인권 문제가 되자 인도네시아는 1999년 동티모르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수용했다. 투표에서 78.5%가 독립을 찬성했으나 결과에 불복한 친인도네시아 무장세력이 학살을 자행하는 바람에 유엔이 개입한 끝에 2002년 동티모르는 독립했다.
그는 동티모르 진실화해위원회 활동도 소개했다. “동티모르에서도 2002년 독립 이후 곧바로 진실화해위원회를 발족시켜 4년 동안 활동했다. 위원회는 희생자와 목격자는 물론 폭력 가해자까지 증언 채록을 했으며 1만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증언자료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100여건에 이르는 건의사항을 작성했다. 정부는 희생자를 기리는 영웅묘역을 만들고, 연간 1억달러의 정부 기금을 마련해 희생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4개 국어로 작성해 비폭력, 화해, 전쟁 없는 사회를 위한 교육 자료로 활용하도록 누구나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는 이날 제주 칼호텔에서 열린 4·3평화포럼에서 ‘과거 극복: 치유와 화합’이라는 기조강연에서도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의 24년에 걸친 분쟁의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비무장 민간인이었고,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가 많았다. 그는 “2002년 자유를 쟁취한 동티모르인은 복수하거나 승자의 정의를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적을 존중하고, 사과를 요구하거나 기다리지 않고 가해자를 용서했다. 독립과 자유로 더 큰 정의가 구현됐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문하고, 죽인 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사과하지 않았고, 여전히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문제다.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그는 “우리는 자유를 얻었으며, 분노와 증오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고통과 굴욕의 비극적 역사에 발 묶이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대화’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만이 긴장을 완화하고 불안과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능한 모든 조건에서 북한과 기술, 과학, 의료, 문화, 대외무역 협력 확대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아시아에는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을 가능성이 있고,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을 만큼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누구도 핵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몸에 난 상처는 치유가 쉽다. 그러나 영혼에 난 상처는 다른 치료법이 필요하다. 치료법 가운데 하나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본질을 흐리지 않고 미화하지 않으며 조작 없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과 시민사회, 역사학계의 정직하고 용기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있는 하무스 오르타 전 동티모르 대통령.
1998년 ‘항쟁 50돌’ 이어 19년 만에
4·3평화공원 참배 “존경스럽다” 2002년 동티모르 독립 이후 4년간
진실화해위 가해·피해 증언 기록
“북핵도 대화로 풀어야 평화공존”
하무스 오르타 전 동티모르 대통령.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