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남재준 전 국정원장(왼쪽부터), 이병기 전 국정원장,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남재준(73)·이병기(70) 전 원장이 17일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특수활동비 게이트’로 확대되고 있다. 앞서 이병기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이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62)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1억여원을 별도 상납한 의혹이 불거지는 등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에 깊숙이 관여한 두 전직 원장이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손실) 및 뇌물공여 혐의 등을 받는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에 대해 “피의자에 대해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중요 부분에 관하여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다만 이병호(77)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했다. 이병호 전 원장이 16일 열린 영장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다른 원장들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고 돈을 상납했다”고 털어놓은 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원장 재임 기간 상납액이 25억~26억원으로 가장 많고, 청와대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신 내는 등 혐의가 가볍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19일 재소환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뇌물공여자들의 구속과 이병호 전 원장의 시인으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에도 성큼 다가섰다. 검찰은 이미 돈을 건네받아 전달한 이재만(51)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이런 진술 등을 토대로 국정원에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회계장부를 건네받아 같은 시기에 청와대에 5000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의 돈이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 장부에는 날짜별 특수활동비 사용액은 나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집행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권 전반의 ‘특수활동비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정원 예산과 인사를 관장했던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 외에도 2014년 7월에서 2016년 1월 사이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 의원에게 1억여원의 특수활동비를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활동비 축소 압박에 시달리던 국정원이 도움을 얻고자 돈을 전달했다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이 전 실장과 전직 국정원장들의 진술에 따라 국정원발 상납 파문이 더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검찰은 아직까지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다. 수사팀 관계자는 최 의원 관련 수사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입을 굳게 닫았다. 이번 수사가 자칫 친박 등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수사로 비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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