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자금 상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는 진술을 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소환 돼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민 세금’인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박근혜(65) 전 대통령에게 몰래 갖다 바친 혐의를 받는 이병호(77) 전 원장이 19일 두 번째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원장은 남재준(73)·이병기(70) 전 원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돼 지난 17일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구속을 면했다.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의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지을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이날 오후 이병호 전 원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국고손실) 위반, 뇌물공여 및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국정원 자금 상납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전 원장은 출석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조사실로 향했다. 지난 10일 첫 조사 때 “우리나라 안보 정세가 나날이 위중해지고 있다. 국정원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에 국정원이 큰 상처를 입고 흔들리고 약화되고 있다. 크게 걱정된다.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준비했던 말들을 내뱉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앞서 이 전 원장은 검찰 조사와 법원 구속영장 심문 과정에서 “전임인 이병기 전 원장 시절부터 이어오던 관행을 따랐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등의 취지의 ‘폭탄 발언’들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원장은 2015년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국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시켜 청와대에 매달 1억∼2억원을 전달하도록 하고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의 이른바 ‘진박 감별용’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납한 혐의를 받는다.
이와 함께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외에 국정원 특활비를 매달 300만∼500만원씩 별도로 받아 챙긴 조윤선 전 정무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그리고 불법 여론조사에 관여한 현기환·김재원 전 정무수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을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수사 속도로 볼 때 뒷돈의 ‘최종 종착지’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는 이르면 이달 안에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전례나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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