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23일 김병찬 전 서울경찰청 수사2계장(현 용산경찰서장) 주변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경찰과 국정원이 결탁해 있었다는 단서를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김용판(59)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재수사가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이날 김 서장의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김 서장의 휴대전화와 하드디스크, 업무 자료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김 서장이 2012년 12월 서울경찰청 수사2계장으로 일하면서 국정원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또 그가 수서경찰서에서 받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을 분석해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조직적인 정치공작 사실을 확인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시 수서경찰서의 수사를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국민의당 의원)도 “김병찬 서울경찰청 수사2계장이 전화해 ‘컴퓨터 분석 작업에 김하영씨를 직접 참여시켜, 그가 동의한 파일만 열람해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신속한 수사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해 항의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김 서장은 또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라인의 지시에 따라 수서서가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16일 밤 11시께 거짓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광석 당시 수서경찰서장(현 대구경찰청 2부장)은 “인터넷 접속기록과 문서파일을 분석한 결과, 혐의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접전이던 당시 대선 막판 판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은 특히 김 서장이 경찰과 국정원 사이의 은폐 공모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서장은 그해 12월11일 김하영씨와 야당 의원들이 오피스텔에서 대치하고 있을 당시 서울경찰청을 담당하는 국정원 정보담당관과 40여 차례의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또 김용판 전 청장이 김하영씨의 컴퓨터 압수수색 영장 신청 문제로 권은희 전 과장과 대립하던 12월12일에도 국정원 쪽과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서장은 당시 국정원 직원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수사 지휘나 대책 논의 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당시 ‘경찰 수사 라인’을 본격적으로 겨누면서, 당시 김 서장의 ‘윗선’이었던 장병덕 전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 이병하 전 수사과장, 이광석 전 서장, 최현락 전 서울청 수사부장,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전 청장은 2013년 검찰 조사를 받고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김 전 청장과 관련해 새로운 범죄 사실을 찾아내더라도 같은 혐의로는 김 전 청장을 기소할 수 없어, 수사가 김 전 청장까지 뻗어 나가기 쉽지는 않을 거란 전망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대선개입 사건의) 경찰 수사 전반을 다 다시 되짚어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사 과정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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