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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평창 패딩, 내 한정판이 설마 ‘쓰레기’일 리 없잖아?!

등록 2017-11-25 09:37수정 2017-11-26 21:37

[토요판] 뉴스분석 왜?
평창 롱패딩이 뭐길래
11월22일 오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지하 1층 앞에서 시민들이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은 전날 저녁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고 오전 10시30분에 선착순 1000명에게 나눠주기로 한 ‘대기표’는 이날 새벽 마감됐다. 연합뉴스
11월22일 오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지하 1층 앞에서 시민들이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은 전날 저녁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고 오전 10시30분에 선착순 1000명에게 나눠주기로 한 ‘대기표’는 이날 새벽 마감됐다. 연합뉴스

▶ 평창 롱패딩 열풍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생긴 현상일까. 사고 싶은 옷 사서 따뜻하게 입으면 그만일 텐데. 그 ‘사고 싶다’는 생각은 순전히 소비자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런 고민들을 담았다.

밤샘 줄서기 ‘평창 롱패딩’ 열풍
거위 솜털 쓰고도 14만9천원
“최고급 재료…마진 낮춰 가능”
SNS 입소문·추운 날씨까지 겹쳐

‘지금 아니면 다시 살 수 없다'
한정판에 열광하는 문화도 한몫
트렌드 ‘자극’하며 성장한 패션산업
‘미래의 쓰레기 생산’ 비판 직면

“테이프 바깥에 계신 분들 제발 해산해주세요.”

“번호표 위에 계신 분들, 자기 번호는 스스로 지키셔야 합니다.”

지난 22일 오전이었다. 번호표 11번 위에 앉은 ㄱ씨는 “어젯밤 9시 반부터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는 “‘1번 분’은 (저녁) 8시에 왔다”고 했다. 이날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평창 롱패딩’ 추가 입고물량 500벌이 “마지막으로” 판매되는 날이었다. 지난 18일 줄만 섰다 구입하지 못한 200명에게 1차 대기표를 배부한 상황이라 추가로 300명에게만 평창 롱패딩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번부터 300번까지 번호표 위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 주위엔 테이프로 ‘바리케이드’가 둘러졌다. 오전 10시30분이 다가왔다. 짧게는 6시간, 길게는 14시간 넘게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내 롯데백화점 출입문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몇몇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바닥에 붙은 번호표를 떼어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묻어 있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3일 전 “선착순 300명에게 (백화점 문 여는 시각인) 오전 10시30분부터 번호표를 배부하겠다”고 알렸다. 번호표 배부 6시간 전인 오전 4시30분에 300명이 ‘마감’됐다. 영등포점과 함께 이날 평창 롱패딩을 판매한 롯데백화점 잠실점, 김포공항점, 평촌점의 사정도 비슷했다.

“죽이는 가성비”는 어떻게 가능한가

평창 롱패딩은 2018 평창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인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말부터 매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정식 제품 이름은 ‘구스롱다운점퍼’. 거위(구스)털로 만든 길이가 긴 패딩(다운)이란 뜻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글로벌 브랜드들의 의류를 생산하는 국내기업 신성통상에서 3만벌 한정으로 제조했다. 패딩엔 제조사(신성통상)나 유통사(롯데백화점)가 드러나는 상표는 없다. 평창올림픽 슬로건인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문구가 왼쪽 팔과 등에 적혀 있을 뿐이다.

그저 수많은 올림픽 기념 상품 중 하나였던 평창 롱패딩은 11월 초부터 몸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패딩을 구입한 사람들이 에스엔에스와 커뮤니티 등에 남긴 ‘선플’들이 늘어났다. 온라인·오프라인 매장에선 품절과 재입고가 반복됐다.

“가격 때문에 기대 안 했는데, 작년에 10만원 초반 롱패딩 구입했다가 싼 티 심하고 따뜻하지도 않았는데, 이건 진짜 싼 티가 안 나요. (…) 이 가격이면 안 사는 게 바보 같음 ㅋㅋ.”(평창 올림픽 공식 온라인스토어에 남긴 후기)

롯데백화점의 ‘평창 롱패딩’ 광고 전단지
롯데백화점의 ‘평창 롱패딩’ 광고 전단지

소비자들이 열광한 주된 이유는 ‘가성비’였다. 평창 롱패딩의 가격은 14만9000원. 15만원 안팎의 롱패딩은 주위에 많다. 가격의 차이는 우선 충전재(보온재)에서 결정되는데 오리털이나 거위털이 아닌 웰론 등의 인조섬유를 쓰면 생산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10만원 미만 롱패딩 대부분이 웰론이나 폴리에스테르를 충전재로 쓴다.

평창 롱패딩의 가성비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충전재로 거위 솜털 80%와 깃털 20%를 쓰고도 10만원대 중반 가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리털보다 거위털이 보온성이 좋다고 알려져 더 비싸다. 또한 가슴 부위의 솜털이 날개에 붙은 깃털보다 보온성이 좋기 때문에 솜털의 비중이 클수록 값이 높다. 평창 롱패딩과 같은 ‘스펙’을 지닌 다른 브랜드의 롱패딩들이 30만~50만원대에 팔리고 있으니 “가성비가 죽인다”(22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서 만난 200번대 번호표를 받은 20대 남성 ㄴ씨)는 말이 충분히 나올 법하다.

평창 롱패딩을 만든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은 “판매가가 싸다고 해서 올림픽을 대표하는 제품을 저가로 만들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1월21일) 신성통상 관계자는 “거위 솜털이나 안감, 겉감은 최고급 재료를 썼다. 단가를 낮추지 않고 마진을 낮춰 판매가격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판매가격은 ‘생산단가+마진’으로 구성되는데, 마진을 최대한 낮췄다는 뜻이다.

물론 같은 거위털이라도 어디서 생산됐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한 아웃도어용품 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추운 지역에서 생산된 거위털의 가격이 높다. 폴란드나 헝가리산 오리털이 중국산보다 비싸다”고 설명했다. “겉감의 종류나 마감하는 데 수작업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단가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내용은 상품 설명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 관계자는 “신성통상은 다른 국내 브랜드보다 생산 규모가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크다. 단가를 낮추거나 마진을 낮추는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져 관심이 커졌을 즈음 때마침 날씨가 추워졌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서울 기준으로 10월 말까지 영상 15도 안팎이던 평균기온이 11월4일 처음으로 10도 아래로 떨어졌고 11월15일 이후 5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한다면 짧은 기간에 따뜻하던 날씨가 겨울 날씨로 급격히 바뀐 셈이다. 의류업계에선 “겨울옷 판매는 광고모델보다 날씨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광고보다 더 효과가 큰 이른 추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11월22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 붙은 ‘평창 롱패딩’ 대기 안내문. 박현철 기자
11월22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 붙은 ‘평창 롱패딩’ 대기 안내문. 박현철 기자

싸게 나온 ‘한정판’

롱패딩의 유행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미 2~3년 전부터 10대, 20대를 중심으로 ‘벤치파카’라 불리며 퍼지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주로 주문 제작해 입는 ‘과잠’도 점점 길어져 이 유행에 동참했다.

벤치파카는 이름처럼 운동선수들이 주로 입던 옷이다. 교체 전후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종목의 선수들이 벤치에서 대기하는 동안 입는 용도였다. 운동량이 많아 타 종목에 비해 땀을 많이 흘리는 축구나 농구 선수들이 많이 입었다. 얇은 유니폼을 입어야 하지만 언제 투입될지 몰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들에게 보온성이 뛰어난 벤치파카는 유용했다. 같은 이유로 야외 촬영이 많은 연기자나 공연을 앞둔 가수들이 즐겨 입기도 했다.

10~20대에게 롱패딩이 확산하는 데엔 무엇보다 아이돌을 포함한 연예인들의 ‘역할’이 컸다. 연예인들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입던 롱패딩 사진을 자신들의 에스엔에스에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본 팬들은 포털 검색창에 “○○○ 패딩”을 입력했다. 이 과정을 의류업체들이 그냥 지켜볼 리 없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에스엔에스에 올리거나 보도사진을 통해 노출되는 옷들은 협찬인 경우가 많다. ‘한달에 한번 이상 에스엔에스 노출’ 같은 조건이 (계약에) 붙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궁극적으로는 업체들이) 불지핀 롱패딩 유행과 ‘가성비’에다 ‘한정판’이라는 요인이 더해져 평창 롱패딩 열풍은 완성됐다. 가성비만 따진다면,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하면 어렵지 않게 평창 롱패딩과 비슷한 스펙을 지닌 비슷한 가격대의 롱패딩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패딩이 불티나게 팔리진 않는다.

22일 오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선 개점시간에 맞춰 ‘이벤트 매장’도 영업을 시작했다. 백화점 입주업체들이 출입문 앞에서 이월상품이나 재고물량을 세일해서 파는 매장이다. 이벤트 매장엔 롱패딩도 있었다. 충전재로 오리털을 썼고 가격은 9만9000원이었다. 가성비만 따진다면 평창 롱패딩 못지않지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선착순 300명에 들지 못한 50대 여성 ㄷ씨가 사진을 찍어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거라도 살까?”

“아니.”

예술인문학자 이동섭 칼럼니스트는 “백화점 앞에서 밤새도록 줄 서서 기다리는 20대들에게 평창 롱패딩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게 없는 시대에 한정판이 주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가치는 크다. 한정판의 가치는 그렇게 구입한 물건들을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올려서 인증하는 문화로 이어지면서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평창 올림픽 공식 온라인스토어를 보면 마스코트나 엠블럼이 크게 그려진 후드티 등 일부 상품들도 매진 딱지가 붙었다.

이런 이유로 이동섭 칼럼니스트는 “평창 롱패딩의 열풍이 다른 브랜드의 롱패딩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기성품들은 한정판이 주는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몇몇 업체의 롱패딩은 품절 상태다. 품절과 재입고가 반복되고, 이 과정을 언론이 기사로 부각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패스트 패션(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 또는 의류업계)의 특성이기도 하다. 유니클로나 에이치앤엠(H&M) 등이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다. 물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일반화하면서 점점 패스트 패션과 패스트 패션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논문 ‘현대 소비사회의 이해를 통한 패스트 패션 연구’(윤태영·노지연·고애란, 2014년 8월)는 ‘제한성’을 패스트 패션의 특성으로 꼽으며 “동시에 많은 상품들을 소량씩 제작함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당대의 스타일 아이콘이나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제한된 수량의 한정 상품을 발표함으로써, 개성과 사회적 차이화(차별화)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내밀하고 무한한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정판의 가치를 패션업계가 만들고 부추긴다는 얘기다. 2015년 11월 글로벌 스파(SPA. 제조·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인 에이치앤엠이 명품 브랜드 ‘발망’과 협업해 아이템을 내놓았을 때 벌어졌던 ‘밤샘 대기’ 소동이 전형적인 사례다.

인간과 동물, 환경을 위한 패션

평창 롱패딩에 열광하는 사이, 우리가 외면하거나 숨기는 문제들이 많다. 패딩의 가성비를 논하기 이전에 패딩용 충전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문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패딩 하나당 15~20마리의 거위 또는 오리가 희생된다. 생후 10주부터 시작해 6주 간격으로 산 채로 털을 뽑는다.

그린피스 보고서 ‘타임아웃이 필요한 패스트 패션’(Timeout for fast fashion)을 보면 전세계 의류 판매 매출은 2002년 1조달러에서 2015년 1조8000억달러(약 2000조원)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보고서는 “15년 전보다 평균 의류 구매량이 60% 증가한 반면 옷을 버리는 속도는 두배 빨라졌다”고 분석했다. “오늘의 트렌드가 내일의 쓰레기”(Today’s trends are tomorrow’s trash)인 셈이다. 평창 롱패딩을 만든 신성통상의 누리집을 보면 ‘주요 바이어’로 노스페이스의 모회사인 미국의 의류 기업 브이에프(VF), 영국의 저가 스파 브랜드 프라이마크(PRIMARK) 등이 소개돼 있다. ‘내일의 쓰레기’를 팔아 돈을 버는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업체이자 글로벌 의류 재벌들이다.

동물을 학대하고 환경을 파괴하는데 사람이라고 무사할까. 생산되는 모든 섬유의 60%에서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 제조 과정에서 면 섬유의 3배에 이르는 탄소가 배출된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은 세탁하는 과정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을 방출한다. 영국의 <가디언>은 2016년 9월 한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옷 한벌을 세탁할 때 최대 70만개 이상의 미세 플라스틱 섬유가 방출된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탠시 호스킨스는 그의 책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에서 “이윤만을 좇는 패션의 끝없는 탐색 과정에서 인간, 동물 혹은 환경에 대한 존중은 거의 찾을 수 없다”고 썼다. 가난한 노동자들과 고객들을 극심하게 착취하면서 성장한 패션 산업은 동물을 학대하고 환경을 파괴해왔다. 그리고 결국엔 모두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중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참고 자료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2016·탠시 E. 호스킨스)
<타임아웃이 필요한 패스트 패션>(2016·그린피스)
<현대 소비사회의 이해를 통한 패스트 패션 연구>(2014·윤태영 노지연 고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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