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관님, 재판관님, 영광입니다.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민중들에게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1974년 7월9일 오전, 국방부 비상보통군법회의 법정에서 열린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련자들에 대한 공판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김병곤(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의 최후진술은 지금껏 민주화운동사에 전설로 남아 있다.
하지만 <김병곤 평전>의 저자 김현서씨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대학 4학년의 그가 담담하게 영광이라고 말했다는 겨울공화국의 전설도, 요동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섯 번의 구속을 겪은 남다른 이력도 다만 그의 삶의 한 부분이었을 뿐, 김병곤이라는 한 인간을 다 담아내는 표지는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김병곤은) 듬직하고 환한 산맥이었던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평전’은 “(서른일곱살) 짧은 생으로 인해 여름날의 그 산맥은 완결되지 않았으나 그에게 한 번쯤 사로잡힌 기억을 가진, 내면의 떨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기억의 저장소”라고 설명한다.
1953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김병곤은 대학 1학년 때 광주대단지(성남)에서 도시빈민의 실상을 보면서 민중에게 쓸모있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래 73년 최초의 반유신 시위, 74년 민청학련, 84년 민청련 등 조직 활동, 79년 동일방직 사건, 87년 구로구청 사건 등으로 여섯 번의 구속을 겪으며 온몸으로 투쟁했다. 옥중에서 암 진단을 받은 그는 90년 12월6일 서른일곱 짧은 삶을 마감했다.
저자 김씨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8년 이화여대에 입학해 역사를 전공한 뒤 95년 소설 <맞불>로 등단한 전업작가다. 고인과 특별한 개인적인 인연도 없고 민주화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이력도 없는 그가 ‘평전’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세대로서 어떤 부채감 때문”이라고 답한 그는 “운동권의 전설로만 갇혀 있는 투사를 넘어서 매력적인 한 인간”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1992년 나온 <고
김병곤 추모평가관련
자료집>과 2010년 20주기를 맞아 출간된 <김병곤 약전>(현무환 엮음)을 통해 구속 투옥된 사건, 각 사건에 대한 지인들의 기억과 회상, 암 투병 중 구술한 고인의 회고 등 고인의 투쟁사는 이미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여기에 2013년 59살로 작고한 부인 박문숙(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에 대한 기억도 더해져 500쪽 넘는 ‘평전’이 탄생했다.
실제로 ‘평전’에 실린 추천사에서, 민청학련 사형수 동지였던 이철 전 의원은 “내가 만난 최고의 인물 김병곤, 박문숙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삶과 정신이 후세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인간의 표상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썼다.
실천문학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30번째 권으로 나온 <김병곤 평전>의 출간기념회가 27일 저녁 7시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다. 새달 3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묘역에서는 고 김병곤 27주기 추모식도 열린다. 고인의 고향 김해에서도 ‘추모 조형물 건립’을 추진 중이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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