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오른쪽)과 송두환 대검 검찰개혁위원장. 연합 사진
검찰의 사건 수사와 기소에 대한 상급자나 지휘부의 지시·지휘 등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으로 남겨진다. 검찰권의 남용과 정치적 왜곡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어, 검찰 자체 개혁은 물론 검찰 일선의 실제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는 27일 검찰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화하는 등 투명화하고, 형사기록 공개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제3·4차 권고안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문 총장은 “위원회 권고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권고안에서 “영장 청구와 기소 여부 등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이뤄지는 모든 결재과정에서 주임검사와 상급자 간에 이견이 있으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각각의 의견을 모두 기재해 저장하는 등 적정한 방법으로 기록해 보존할 것”을 권고했다.
개혁위는 “일선 검찰청이 보고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대검찰청이 지휘권을 행사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을 서면 또는 다른 적정한 방법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개혁위는 “이를 통해 검찰 지휘권이 보다 신중하게 행사되도록 하고, 결정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함으로써 검찰 결정의 공정성·투명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검찰에서는 2009년 ‘피디수첩’ 사건, 2012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일선 수사팀과 지휘부 간에 수사 방향과 기소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이 벌어져 사건 처리가 왜곡됐다는 논란이 자주 불거졌으나, 구체적인 실체와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또 지난 6월 ‘제주지검 압수수색영장 회수’ 사건처럼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상급자의 부당한 개입으로 검찰 결정의 공정성 등 신뢰가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권고안은 또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 행사 절차와 방식을 구체화한 대검 지침을 제정해 서둘러 시행할 것도 권고했다. 개혁위 권고는 △이의 제기 전 숙의 △서면을 통한 이의제기 △기관장의 지시 등 필요한 조처에 따를 의무 등을 담도록 하고 있다. 개혁위는 이의제기를 이유로 해당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하며, 관련 서류는 10년간 보존할 것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소송 당사자 등에게 공개되는 형사기록의 범위를 넓히고 기록 보존 기간도 연장하는 방안이 개혁위 권고에 따라 추진된다. 특히 고소 사건의 경우 원칙적으로 양쪽의 진술 및 제출자료까지 모두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하고,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관계인은 다른 사람의 진술까지 동의를 받아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개혁위는 사건 관련자가 특별히 요청하거나 재심 절차를 위해 필요한 때는 법정 기간이 지난 뒤에도 형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위원회는 또 공판 과정에서 검찰 의견서 등 중요 서류는 피고인·변호인을 위해 한 부 더 제출하고, 법원의 형사기록 공개 결정에 검찰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조처도 취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문 검찰총장은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자체개혁 방안의 하나로 사건의 검찰 내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내년 중 시행한다는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기록으로 남기면 소신을 지키기 쉬워지겠지만, 실효성을 위한 구체적 내용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이런 조처들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취지는 좋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고, 상사는 결정을 못 하는 문화가 굳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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