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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구로 분배농지 강탈 사건’ 반세기만에 유족들 승소 확정

등록 2017-11-29 12:37수정 2017-11-29 13:58

구로공단 건설 이유로 땅 뺏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
박정희 정권, 패소 잇따르자 보복·강압 수사로 수용 관철
과거사위 진상규명 결정 이후 재심 무죄, 손해배상 판결
서울 구로동은 논밭에서, 공장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을 거쳐 이제 구로디지털단지로 변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구로동은 논밭에서, 공장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을 거쳐 이제 구로디지털단지로 변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960년대 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빼앗기고 소송사기범으로까지 몰렸던 농민들의 유족이 반세기 넘어서야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9일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 피해 농민들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4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모두 확정했다. 원심은 재심 사유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족들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등기부취득시효완성 등을 이유로 기각했지만, 손해배상청구는 대폭 받아들였다.

문제 된 서울 구로동 일대 약 100만㎡(약 30만평)는 일제가 1942~1943년 군용지로 쓰겠다며 강제로 수용한 땅이었다. 해방 후인 1950년 3월 정부는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했다. 1983년 사망한 이영복씨도 이때 759평을 분배받았다.

1961년 9월 박정희 정권은 구로공단을 조성하겠다며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토지 관리권을 재무부로 넘겼다. 이씨를 비롯한 농민 46명은 1967년 정부를 상대로 ‘애초 분배받은 농지를 돌려달라’며 모두 9건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내 대부분 승소했다. 이씨는 분배농지의 대가인 상환 곡식 수령을 한사코 피하던 정부에 ‘상환곡을 수령하고 소유권이전 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내어, 1970년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까지 받았다.

소송에서 패소를 거듭하던 정부가 이즈음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은 1968년 3월 ‘농지분배 서류의 조작 사실을 인지했다”며 농민들뿐 아니라 농림부 등 각급 기관의 농지 담당 공무원들까지 잡아들였다. 1970년 7월까지 모두 143명이 체포·구속됐고, 이 중 상당수는 민사소송 취하와 땅에 대한 권리 포기를 약속하고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불법적으로 구치소와 유치장에 감금되거나, 벌거벗겨진 상태에서 구타를 당하고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끝내 버틴 41명이 재판에 넘겨져 이 중 2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도 파기환송심 도중 소송사기 미수 혐의로 기소돼 1979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형사재판에서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는 결과를 얻어낸 정부는 형사재판이 끝난 뒤부터 민사소송 재심을 잇달아 벌여 대부분 승소했다. 이씨는 몇 년째 계류 중이던 민사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애초 판결과 달리 1979년 10월 원고패소를 선고받았다. 이씨는 상고를 포기했고, 1983년 사망했다. 그렇게 억울함을 안은 채 숨을 거둔 농민은 이씨만이 아니었다.

2008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민·형사 재판이 다시 시작됐다. 과거사위는 “국가가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사소송에 개입하여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건”이라며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 연행해 가혹행위를 가하고 위법하게 권리 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것은 형사소송법상의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농민 등 26명 가운데 23명이 형사재판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정부가 승소했던 민사소송 재심을 다시 심리해달라며 재재심을 청구했다. 이씨 유족들도 2011년 12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2012년 1월 민사소송 재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이씨의 유족 5명이 낸 재심 사건에서 “1979년 판결에서 인용된 서류 조작의 증거들은 모두 형사재심의 무죄 판결 확정으로 근거를 잃어 인정되지 않는다”며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그러나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에 대해선 “1996년 시행된 옛 농지법이 3년 안에 농지 대가의 상환을 완료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러지 못한 채 시한을 넘겨 상환 완료를 이유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는 불가능하게 됐다”며 기각했다.

서울고법은 대신 정부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이씨는 분배농지를 취득했을 것”이라며 “무죄 판결이 확정된 2011년 12월까지는 손해배상청구 등의 권리 행사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만큼, 국가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농지 대가 상환을 통해 농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한이었던 1998년 12월31일의 시가에 상당하는 손해액과 법정이율에 따른 이자 등 모두 32억여원을 이씨의 유족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피해자 유족이 제기한 3건의 재심 사건도 같은 이유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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