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지난 21일 강릉행 케이티엑스(KTX) 개통으로 청량리~원주 사이 선로가 ‘복잡’해져 기존 노선의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하루 네번 청량리와 경북 영주를 오가는 아이티엑스(ITX)-새마을호 노선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영주행 새마을호가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들과 철도노조는 ‘수익성’만을 좇는 국토부와 코레일의 결정에 반발하는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고속철도가 강릉까지 달리게 됐습니다. 더 빠르고, 더 편리하게 철도가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 혜택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텐데, 혜택을 누리기는커녕 발전하면 할수록 소외되는 지역,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74명 정원인 객차에 15명 남짓이 앉았다. 썰렁한 객차는 대신 아늑했다. 좌석도 앞뒤 공간도 비좁아 숨막힐 지경인 케이티엑스(KTX)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케이티엑스 요금에 익숙해서인지 이 가격(1만9700원)에 이렇게 넉넉하게 앉아 있으니 뭔가 ‘혜택’을 받는 느낌이다.
지난 11월28일 아침 7시50분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영주행 아이티엑스(ITX)-새마을호(이하 새마을호)를 탔다. 단양에 갔다가 금요일에 청량리로 돌아온다는 ㄱ씨는 말했다. “일단 편하지. 경로할인(65살 이상·약 30%)도 되니까 버스보다 싸지. 버스보다 흔들리는 것도 덜하고 나야 뭐 시간이 많긴 하지만 도착시간(2시간35분 소요)도 정확하고. 복잡하지도 않고, 이만한 게 없어.”
코레일, 강릉행 KTX 개통 앞서
청량리~영주 새마을호 폐지키로
“열차 혼잡·수익성 고려한 결정”
일반철도 노선은 감소 불가피
타당성 낮고 ‘중복투자’ 비판에도
‘공공성’ 강조하며 새 노선 건설
기존 노선엔 ‘수익성’ 압박 이중잣대
“국토부가 추구하는 건 공사 그 자체”
이런 편리함을 오는 15일부터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ㄱ씨는 모르고 있었다. 하루 네번 서울 청량리와 경북 영주시를 오가는 새마을호 열차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지난 21일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새마을호 4회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강원도민의 ‘숙원’(이라고 강조하는) 강릉행 케이티엑스의 일정이 확정·발표되던 날이었다.
코레일은 불가피한 감축이라는 입장이다. 코레일 여객사업본부는 “강릉행 케이티엑스가 청량리~서원주 구간을 중앙선 열차와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열차경합이 심해져 이를 해소하기 위해 조정이 불가피했다. 무궁화호와 소요시간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가격이 비싸 이용객이 적은 새마을호를 (폐지 대상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너무 넉넉하고 너무 아늑했기’ 때문이다.
‘효율성’이라는 압박
우리나라 철도는 국토교통부가 정책을 세우고 건설을 승인하면 철도시설공단이 국가 재정으로 철로를 건설하고 코레일이 운영을 하는 구조다. 이익을 남겨야 하는 코레일이 ‘돈이 안 되는’ 노선을 없애는 건 어찌 보면 회사로서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노선 중 수익을 내는 곳은 케이티엑스(경부선·호남선) 정도다. 일반철도(무궁화·아이티엑스-새마을)는 대부분 적자 노선이다. 용산~춘천 구간을 달리는 ‘아이티엑스-청춘’도 적자다. 케이티엑스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적자 노선들의 손실을 메꾸고 있다.
하지만 철도는 경제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공공적 성격이 큰 교통 수단이다. 그래서 손실의 일부를 나라에서 보전해준다. 우리 철도산업기본법은 “공익서비스 제공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피에스오(PSO·Public service obligation) 보상이라고 하는데,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요금을 할인해주거나 벽지노선을 유지함으로써 생기는 적자를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해 12월 코레일은 “정부 보조금이 삭감돼 열차운행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7개 벽지노선(경전선·동해남부선·영동선·태백선·대구선·경북선·정선선)을 운행하는 하루 112개 열차를 절반으로 축소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회를 통과한 2017년 정부 예산 중 벽지노선 손실보상 예산은 2016년보다 650억원이 삭감된 1461억원이었다. 제도 시행(2005년) 이래 가장 큰 폭의 삭감이었다. 국토부가 코레일의 감축안을 최종 승인하지 않아 벽지노선의 감축이 실행되진 않았다.
그럼, 철도의 공공성에 대한 국토부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할까? 그렇지 않다. 얼핏 국토부가 벽지노선을 없애려는 코레일에 제동을 건 것처럼 보이지만 국토부의 최근 기조 역시 벽지노선 축소에 맞춰져 있다. 사실은 650억원 삭감안을 마련한 곳도 국토부다. 국토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을 보면 ‘벽지노선 운영 효율화’라는 제목으로 “수요에 기반한 서비스 환경을 조성하고 운행 확대 요구가 있을 경우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며 불필요한 벽지노선 축소 및 감축 운행”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원인자 부담 원칙’이란 결국 요금을 올리겠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공익서비스 비용 보상에도 소극적이었다. 코레일이 2011~2015년 5년간 공익서비스로 2조797억원을 썼지만, 정부는 1조6276억원(78.7%)만 지원했다.
녹색연합이 지난 9월 작성한 ‘철도난개발과 공공성 악화 보고서’는 “국토부가 감축을 떠미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벽지노선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 없이 책임을 떠넘기는 국토부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예산 삭감을 단행한 기획재정부 모두 문제다. 벽지노선 이용객은 주로 노인과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다. 자가운전을 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인데 이들을 1차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결국 공공성을 포기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국토부가 최근 도입한 ‘무늬만 경쟁’ 체제는 적자노선을 더욱 코너로 몰고 있다. 국토부는 2011년 발표한 ‘제2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에서 “철도운송시장에서 경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2013년 에스알(SR)을 설립하고 2016년 12월 수서발 고속철도인 에스알티(SRT)를 개통했다. 당시 국토부는 “에스알티와 케이티엑스의 경쟁으로 요금은 떨어지고 서비스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서발 고속철도는 에스알이 독점하는 반면 코레일은 적자노선도 운행해야 하는 등 애초에 경쟁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14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던 코레일의 경영 사정도 나빠졌다. 서울역을 이용하던 강남 쪽 승객들이 에스알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코레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539억원 흑자였던 코레일의 영업손익은 올해엔 1682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코레일의 적자는 결국 일반철도의 축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효율성도 공공성도 아닌…
그렇다면 국토부의 철도정책은 효율성 차원에서라도 일관성이 있을까? 현재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진행 중인 일반철도 건설 사업(신설·개량)은 모두 29건이다. 녹색연합은 이들 사업 중 춘천~속초 노선(신설)과 이천~문경 노선(신설)을 “향후 적자 운영을 명백하게 예상할 수 있는 노선”으로 꼽았다.
예비타당성조사만 4차례나 실시한 춘천~속초 노선은 2024년까지 2조631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건설사업이다. 2020년 도입 예정인 EMU-250 전동열차가 투입돼 시속 200㎞ 이상 속도로 운행할 계획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춘천~속초 노선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부적합 결과가 연이어 나온 이유는 노선이 지나는 춘천시(28만)~화천군(2만5천)~양구군(2만2천)~인제군(3만)~속초시(7만9천·이상 국가통계포털 2016년 기준)의 인구가 적어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6년 7월 ‘지역 균형 발전’에서 가산점을 받아 통과됐다. 경제적 타당성은 여전히 ‘미달’이었다.
춘천~속초 노선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수두룩하다. 노선의 승패는 결국 서울 승객일 텐데, 서울(용산)~춘천을 오가는 아이티엑스-청춘 열차는 이미 적자 운영 중이다. 이 구간은 자동차와 비교해서 소요시간이 획기적으로 빠른 것도 아니다. 현재 용산~춘천 노선의 소요시간(약 1시간20분 안팎)을 고려하면 춘천~속초 노선을 이용해 용산에서 속초까지 가는 데 1시간대 후반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말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개통하면서 국토부가 강조한 소요시간(1시간30분)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여기까진 어디까지나 ‘사후 고려 사항’이다. 노선은 설악산을 통과하게 된다. 환경 파괴는 불가피하다.
사업을 밀어붙이는 국토부는 ‘낙후된 강원도의 철도 접근성 개선’이라는 사업효과를 강조한다. ‘유라시아 대륙철도 연계 철도망 구축’이라는 이유도 끌어다 댄다. 하지만 국토부의 행태는 이중적 잣대라 비판받기에 충분하다. 공사를 시작할 때 빠지지 않는 ‘사업 의의’로 강조되는 항목이 ‘철도의 공공성’ ‘공공재로서의 철도’ ‘지역 균형 발전 도모’ 같은 말들이지만 정작 노선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땐 수익성과 효율성에 밀리는 게 공공성이기 때문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국토부가 추구하는 건 철도의 경제성도 공공성도 아닌 공사 그 자체”라며 “새로운 노선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노선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공공연구원 박흥수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고속철도가 도입되는데 그 혜택을 받기는커녕 기존에 누리던 철도 서비스까지 줄어드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철도 건설과 운영 주체가 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로 분리됐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런 비유를 들어 사정을 설명했다. “시설공단은 효율적인 건설을 추구한다. 철도의 장점을 살리려면 접근성이 좋아야 하는데 새로 지어진 역들 대부분이 도시 외곽 논밭에 있다. 영업하는 코레일 입장에선 난감하다. 장사를 하는 가게 주인이 장사할 곳을 정하지 못하는 꼴이다.”
더군다나 청량리발 영주행 새마을호를 폐지한 결정은 현재 진행중인 철도 개량 사업을 고려해도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다. 중앙선의 원주~제천(2018년 완공·사업비 1조1895억원), 도담~영천 구간(2020년 완공·사업비 3조7114억원)은 현재 복선전철화 공사가 진행중이다. 모두 폐지가 결정된 청량리발 영주행 새마을호가 다니는 구간이다. 두 공사 모두 ‘낙후된 지역개발’을 사업효과로 제시했다. 공공성을 이유로 공사를 시작하고 수익성을 이유로 노선을 폐지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철도노조 영주열차승무지부 박정수 지부장은 “중앙선 복선전철화 공사를 추진하면서 정작 중앙선 노선을 줄이는 결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철도의 공공재적 성격, 지역 균형 발전 같은 가치들은 안중에도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강릉행 케이티엑스는 살아남을까
영주행 새마을호가 폐지되는 직접적 역할을 한 강릉행 케이티엑스는 ‘돈’이 될까. 원주~강릉 철도건설 사업은 2007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 비율·1 이상이면 사업성이 인정됨)이 0.287에 불과했다. 좌초될 뻔했던 강릉행 케이티엑스 건설은 겨울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건 정부지원위원회가 2010년 추진 사업으로 결정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년 5월 ‘국제스포츠행사 지원사업 평가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비합리적이고 과장된 사업 타당성 분석 사례”로 평창 겨울올림픽을 꼽았다. 보고서는 “원주~강릉 철도건설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이 낮고 동계올림픽과의 연관성 등 정책적 평가항목을 고려한 타당성도 낮았다”며 “국제스포츠행사를 경제성이 열악한 에스오시(SOC) 사업 추진의 계기로 이용했다”고 평가했다.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는 2010년 3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인천공항에서 알펜시아 클러스터(평창)까지 68분에 도착한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제안하기도 했다.(아이오시는 제안에 또 높은 점수를 줬다) 국토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강릉행 케이티엑스의 서울~강릉 소요시간은 114분이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월 철도의 날 기념식에서 “그동안 수익성을 중시했던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하고 공공성을 강화해 철도 본연의 역할인, 국민에게 ‘더 빠르고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한’ 철도 서비스를 제공해달라”고 말했다. ‘공사 착공을 위한’ 공공성과 ‘운영 중인 철도의’ 공공성은 구별돼야 한다. 지금처럼 건설을 위한 공공성만을 중시한다면 강릉행 케이티엑스 역시 수익성의 덫에 걸려 운명을 달리할 날이 올 것이다. 물론 먼 훗날의 얘기겠지만.
영주/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