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원장(왼쪽 셋째)이 지난 9월18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신설' 관련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81년 ‘진도 간첩 조작 사건’에 엮여 17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동운(71)씨는 2009년 재심에서 무죄 및 형사보상 선고를 받았다. 2012년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 ‘생계비에 쓰라’며 8억6000여만원을 가지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원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당했다. 대법원 판례 변경(2013년 12월)으로 배상금 청구권 소멸시효가 3년에서 6개월로 줄어들었다며, 2012년 받은 ‘부당이득’에 연이자 15%까지 더해 토해내라는 것이었다. 박씨는 지난 6월 1심에서 10억6000여만원을 반환하라는 선고를 받고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재단법인 진실의힘 송소연 이사는 “젊었을 땐 손으로 고문했던 정부가 이제는 돈으로 두 번 고문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서울대 교수)가 7일 국가 공권력에 의한 고문, 증거조작 등 반인권적 범죄의 국가 배상책임에 소멸시효를 두지 말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재심 무죄판결 뒤 소멸시효 단축으로 배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는 박씨 외에도 가족 간첩조작 사건의 이준호씨,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정영씨, 반국가단체 아람회 구성 조작 사건 피해자 등이 있다.
개혁위는 또 이날 권고안을 통해 △판결로 배상받지 못한 피해자에 대해선 국가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안을 제출하고 △이미 지급된 피해자들에게는 반환을 요구하지 말고 △헌법재판소에 소멸시효 적용은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힐 것 등을 권고했다. 개혁위는 “국가가 인간 존엄·가치를 침해하고도 배상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국가 기본가치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국가 스스로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해 권고안에 대한 법무부 입장을 조속히 낼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개혁위는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온 검찰의 ‘밤샘조사’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인권보호 수사준칙’(법무부 훈령) 개선 권고안도 법무부에 전달했다. 위원회는 조사를 저녁 8시까지는 끝내도록 하고, 부득이하게 조사를 계속해야 할 경우에도 조서 열람을 포함해 밤 11시에는 모두 마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위는 또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소환을 ‘기습’ 통보하지 말고 최소 3일의 여유를 두라고 권고했다. 조사 도중에는 2시간마다 10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고, 피의자가 메모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무부 훈령은 심야 조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본인 동의가 있을 경우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심야 조사가 범행 자백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검찰 일각에서는 “재소환을 바라지 않는 피의자가 심야조사를 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사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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