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된 아재만(왼쪽),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지난 11월1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 불출석 관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봉근(51)·이재만(51) 전 청와대 비서관이 19일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국정원 자금 전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특별사업비인지 알지 못했다”며 돈의 용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편,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미뤘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 심리로 19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에 대한 ‘국정원 특활비 상납’ 첫 공판이 열렸다. 두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국정원 자금 33억원(안 전 비서관은 27억원)을 상납받아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다. 안 전 비서관은 2013년 5월~2015년 2월 1350만원을 국정원에서 개인적으로 받은 혐의(뇌물)도 있다.
이날 두 비서관의 손가락은 ‘윗선’인 박 전 대통령을 가리켰다. “국정원에서 돈이 올 테니 받아두라”는 내용의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고 자금 ‘전달자’ 역할을 했을 뿐, 국정원 자금의 지원 경위나 특별사업비 해당 여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국고 손실 등 혐의의 공범이 아니란 취지다.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단 주장도 나왔다. 이 전 비서관 쪽은 “총무비서관으로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안 전 비서관 역시 “구체적으로 범행을 공모한 적 없다. 종범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봉투가 올 테니 받아두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고도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돈’이 아니라 ‘봉투’를 전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2013년 5월 첫 범행 때만 해도 내용물을 몰랐다는 주장이다. 그는 “처음에 대통령님께서 봉투가 오면 받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국정원에서 받은) 봉투 안에 딱딱한 박스가 있다는 것 정도만 느꼈다”고 했다. 이후 두 번째 봉투를 전달받은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청와대 특수활동비처럼 관리하라”고 지시해 비로소 내용물이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게 이 전 비서관 증언이다.
이 전 비서관 쪽은 청와대에서 국정원의 특별사업비를 사용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 전 비서관의 변호인 정성엽 변호사는 “국정원 활동 전반을 관할하는 대통령의 지위와 국정원과의 관계에 비춰서 특별사업비 일부를 청와대에서 사용한다 해도 그 사업목적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직무 범위를 고려할 때 국정원 자금 역시 넓게는 ‘통치자금’으로 볼 수 있단 취지다.
이에 대해 검찰은 “두 비서관이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원장에게 자금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며 반박에 나섰다. 단순히 대통령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이미 약속된 자금 전달을 단순히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날 쟁점을 정리한 재판부는 다음달 9일 관련 서증조사를 진행하고 26일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증인으로 부를 계획이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