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장 손병철 경정이 재봉틀을 이용해 대원들의 조끼를 수선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장으로 부임한 손병철(49) 경정은 술에 취해 지구대 바닥에 잠든 대학생들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취객들이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병상용 매트를 깔아뒀는데 겉을 감싼 천은 다 해지고 속에 들어 있는 취객들의 구토물이 스민 스펀지는 이미 절반 넘게 뜯긴 상태였다. 손 경정은 “그렇게 더러운 곳에서 시민들을 재우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지구대에 사비로 구입한 재봉틀 2대를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물이 스미지 않는 천막지를 사다 커버를 만들어 병상용 매트에 씌웠고, 길에 쓰러진 주취자를 안전하게 옮길 때 필요한 간이들것을 만들어 순찰차마다 하나씩 구비해두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취객들이 이불을 걷어차지 않도록 담요에 끈을 달기도 했다. 취객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 홍익지구대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간 것이다.
손 경정이 처음 재봉틀을 배우기 시작한 건 13년 전 일이다. 2004년 서울특공대 전술제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특공대원들이 작전용 장비조끼 주머니가 부족해 로프나 휴대전화를 불편하게 들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원들의 옷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그러나 딱히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일반 옷수선집에서는 두꺼운 경찰 장비조끼를 수선할 장비가 없었다. “경찰 특공대 예산으로 재봉틀을 사자”고 건의했지만 ‘왜 쓸데없는 일을 벌이냐’는 반응이었다.
손병철 경정이 아이디어를 내 직접 수선한 조끼(왼쪽)와 기존 조끼(오른쪽). 무전기 등을 넣는 주머니를 기존 조끼보다 위쪽에 달아 무게중심을 분산시켰고, 장갑을 걸 수 있는 고리와 볼펜꽂이 공간을 추가했다. 왼쪽 앞주머니에 있던 권총집을 맨 오른쪽으로 옮겨 달아 사용이 쉽게 만들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사비를 털어 재봉틀을 구입하고 독학으로 재봉틀질을 익혔다. 특공대 건물 보일러실에 재봉틀 하나를 놓고 대원들의 근무복에 장갑, 열쇠 등을 걸 수 있는 주머니와 고리 등을 달아줬다. 서울특공대원들의 근무복 리폼이 소문이 나면서 지방 특공대에서 ‘장비 견학’을 오기도 했다.
손 경정은 경찰청이 전국 경찰에 지급 예정인 새 장비조끼 제작 과정에 개선위원으로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기존 조끼보다 커진 수갑함, 뚜껑을 여닫지 않아도 되는 무전기 주머니 등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손 경정은 왜 이렇게 ‘장비’에 집착할까. “경찰이 단정하고 깔끔해야 현장에서의 대응능력도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재봉틀 돌리는 지구대장’의 한결같은 소신이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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