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협력해 야권과 진보 세력을 종북세력으로 잡아 비판하는 등 편향된 내용의 안보교육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1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국가정보원 예산으로 보수단체를 설립해 정부 비판 인사들을 ‘종북’으로 낙인찍는 공작을 벌여 온 혐의를 받는 박승춘(71) 전 국가보훈처장이 12일 검찰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이날 박 전 처장을 국정원법(정치관여) 위반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 전 처장은 ‘국정원 여론조작 공모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인정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에서 ‘나라사랑 교육에 좋은 자료가 있어 배포하고 싶으니 배포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배포처를 알려줬고 국정원이 배포했다. 국정원에서 줬다는 것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익명 기부자에게 배포처를 제공해서 협찬자가 배포했다’ 이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이 원세훈(67)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과 함께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라는 이름의 민간 보수단체를 세워 초대회장을 맡아 안보교육을 빙자해 선거 등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은 2010년 1월 설립 때부터 2014년 이 단체가 청산할 때까지 임대료, 상근 직원 인건비, 강사료 등으로 자체 예산 63억여원을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의 이런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 국발협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각급 정부기관, 기업, 학교 등에서 400만명을 대상으로 1만 7000회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국정원은 국발협 강사들이 사용한 안보교육 교재와 디브이디(DVD) 영상 자료도 직접 제작했다. 이들 교재와 디브이디에는 “북한이 바라는 노무현 후보”, “사회 곳곳에 종북·친북 세력이 파고들었다”,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 이행은 김일성의 조국통일 노선을 관철시키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2012년과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27기인 박 전 처장은 육군 제9군단장, 국방정보본부장 등을 지낸 ‘엘리트 무인’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2월 시작해 박근혜 정부 내내 국가보훈처장을 지내며 ‘대선 개입’, ‘임을 위한 행진곡 반대’ 등 정치 편향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11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정무직 공무원 가운데 가장 먼저 경질됐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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