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 발표로 원세훈(67)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을 둘러싼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유착 관계가 드러난 가운데,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공개돼 파문이 일었던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수첩에는 노골적인 사법부 장악 시도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는데, 이번 추가조사위 발표 이후 법조계에서는 ‘공정성 훼손이 의심되는 사건이 비단 원 전 원장 재판뿐이겠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 2014년 9월22일치에 적힌 메모. 특정 판사(김동진 당시 성남지원 판사)를 지목해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라고 언급돼 있다. 이후 해당 판사는 이 메모대로 정직 2개월 직무배제 처분을 받았다.
김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는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일부 판사 제재를 거론하는 등 사법부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메모가 40여차례 등장한다. 2014년 8월29일 메모에는 영장심문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을 언급했던 이형주 당시 군산지원 영장전담판사의 재임용 문제를 거론하며 보수단체를 통해 ‘사회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 이 수첩의 내용대로 보수단체들이 이 판사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9월2일 제출했다.
9월22일 메모에는 원 전 원장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비판했던 김동진 당시 성남지원 판사를 지목하며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라고 적혀 있다. 그 뒤 성낙송 수원지법원장은 대법원에 김 판사의 징계를 청구했고,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정직 2개월의 고강도 징계를 했다. 수첩에 적힌 ‘비에이치(BH·청와대) 의중’ 그대로였다.
이번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내부 문건에 등장하듯 상고법원 설치를 미끼로 법원을 길들이려 한 정황도 수첩에 기록돼 있다. 9월6일 메모를 보면,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 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또는) 다 찾아서’라는 내용이 있다. 8월12일 메모에는 ‘보수·진보 갈등 관련 판결 시 진보 유리하게 선고하는 ○○ 문제’라는 말도 등장한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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